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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슴나무골에서 가꾸는 텃밭 이야기(1):

조심스럽게 펜을 듭니다

박동서 목사 (엘크그로브 가스펠교회)

10여년 간 사역했던 교회를 사임하고, 작은 전원도시로 이사해서 텃밭을 가꾸며 산지 두 해가 되어갑니다. 유학생과 사업가에서 선교사와 이민교회 목회자로 살아 온 남편 덕분에 얻게 된 육신의 병과 마음의 상처들을 치유하기엔 부족한 시간이지만, 아내는 이제 시골 아낙네의 건강한 모습을 많이 회복해가고 있습니다. 저는 늦게 부름 받은 목회자로 살아 온 20여년을 돌아보면서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돌아볼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새로 이사하고 짐도 풀지 못했을 때, 찾아온 열 명 남짓한 교인들의 간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한인교회가 하나도 없던 작은 도시에 난생 처음 교회를 개척하고 말았습니다. 중국 처소교회의 모습과도 흡사하게 3개월 동안 가정에서 모이며 예배를 드리고, 기도회를 하며, 말씀 공부를 했습니다. 때마침 우리 도시에 소수민족 이민자들이 계속 증가한다는 소식을 듣고 좋은 성전까지 구입해서 사역을 시작한 미국 목사님이 자신들의 성전을 헐값에 빌려주어서 모든 것이 완벽히 갖추어진 교회에서 오후 예배를 드리며, 정식으로 개척교회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개척교회를 하시는 수많은 목회자님들을 만나 보았고, 그 노고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자신이 그 사역을 감당하고서야 그 분들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영혼, 한 가정의 소중함이 어떠한지를 이제서야 어렴풋이 알게 된 소득도 있었습니다. 왜 교인들끼리 형제요 자매라고 하는지, 왜 영적인 가족이라고 하는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학교를 가면서 대도시 대형교회 교육 전도사로 부목사로 있다가, 선교지를 거쳐서 다시 중소도시의 중형교회 담임목사로 청빙 받아 섬기다가 목회사역을 마감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제는 주님께서 저의 남은 생애를 작고 연약한 그러나 여전히 소중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섬기다가 오라고 기회를 주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포도원 품꾼들의 삯을 일한 시간에 관계없이 똑같이 지급한 주인과는 달리, 늦게 시작했으니 하나님 나라의 일을 아직 조금 더 해야 한다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햇볕이 잘 드는 뒷마당에 처음 텃밭을 만들고 모종을 심고 씨를 뿌리며 가꾸었더니, 오이와 가지에서부터 파, 깻잎, 토마토, 상추와 빨간 무, 민들레와 허브들까지 풍성한 수확을 거두었습니다. 온 교인들과 나눠 먹으며, 전원생활을 하는 동안에 주님은 어느덧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잡초 투성이었던 마음의 텃밭까지 잘 가꾸어 주셨습니다. 잡석들을 뽑아내듯 욕심도 내려놓게 하셨습니다. 온갖 벌들과 나비, 귀여운 무당벌레까지 날아들어 정원을 더 풍요롭게 합니다.

비 한 번 제대로 뿌려주지 않은 북가주의 가물었던 겨울이 저물어가고, 따뜻한 기온에 나뭇가지의 새순들이 움을 트고 있습니다. 대지와 만물은 말없이 단비를 간절히 기다리지만, 마지막 때의 모든 교회들과 성도들은 성령의 은혜로운 단비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 땅과 영원한 우리의 조국 한국 땅, 온 세계에 있는 주님의 교회들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갈수록 혼탁하고 타락해가는 세상 속에서도 끝까지 말씀을 따르는 신실한 삶을 살게 되기를 조용히 그러나 간절히 기원합니다. 주님, 타락한 교회와 무익한 종들을 용서하시고 이 어두운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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