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쓰키 히로유키(五木寬之)라는 일본작가에게 가까운 친구가 있었는데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친구는 대단히 머리가 좋고 의지와 결단력이 탁월했다. 항상 건강에 신경을 써서 술 담배를 멀리했고 아무리 집에 늦게 들어가도 반드시 일기를 쓰는 습관이 있었다. 한 마디로 인생에 대해 그렇게 성실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가 일기를 쓰는 습관을 가지게 된 것은 ‘오늘 있었던 그 일은 용서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면 잠을 못 이뤄 그 일을 일기에 써놓고 ‘이것만은 평생 잊지 않을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사람만큼은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야’라고 다짐을 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일기가 그 친구의 키만큼 쌓였을 때 그는 갑자기 암 진단을 받고 반년도 지나지 않아 저세상으로 떠나갔다. 이쓰키는 그의 수필에서 그런 성실한 사람은 일찍 죽고 자기처럼 엉망으로 사는 사람은 어째서 지금까지 살아있는지 인생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며 삶의 부조리를 탓하였다. 그런데 그 글을 자세히 읽어보면 그의 본심은 그게 아니었다. 그 친구처럼 그렇게 할 경우 대개 잠깐은 마음이 편해질지 몰라도 결국은 그로 인한 스트레스 때문에 자기 몸을 해치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그래도 용서를 하는 것이 자기를 위해서도 좋다는 취지의 글이다.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다가오는 시점이다. 지난 한 해 우리교회를 돌아보니 밖으로는 성장하는 모습을 가졌지만 유독 이런 저런 일들로 크고 작은 다툼이 많았다. 리더 한 분이 연말모임을 가지면서 “올해는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물론 나는 “해마다 그랬어요. 교회일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아요”라고 답했지만 올해 있었던 일들을 돌아볼 때 마음에 씁쓸함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작은 일이 실마리가 되어 다투고, 오해가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세를 만들어 편을 가르고, 그러다가 급기야 불똥이 목사에게까지 튀고, 리더들이 교회를 뛰쳐나가는 상황까지 생기는 것을 보면서 속수무책인 나 자신의 무능함에 절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이 교회가 자라나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성장통이며, 동시에 피로 값 주고 사신 주님의 교회를 향한 악한 영의 공격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게다가 감사한 것은 지난 일을 쉽게 잊어버리는 나의 나쁜 기억력 탓에 떠나간 교인들에 대한 아픔은 어느 정도 남아있지만 지나간 일들에 대한 괴로움보다는 새해에 기다리고 있는 사역들에 대한 기대감이 나를 더 들뜨게 하고 있다.
95세로 타계한 우리 시대에 가장 존경받는 어른 중 한 분이었던 “마디바”(존경받는 어른, 나라의 아버지라는 뜻) 넬슨 만델라가 남긴 글들을 보면서 많은 위로와 도전을 받았다. 만델라 역시 27년의 수감생활 중에서 초기에는 완전한 증오심 속에서 살았다.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정책에 대항하여 투쟁하다가 종신형을 받고 수감된 지 4년만에 어머니가 죽고, 그 다음해 24살 난 아들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장례식에도 가지 못했고, 그 다음 해에는 아내조차 수감되었다. 그때 그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 “나는 완전히 울분에 젖어있다. 나의 모든 부분이, 살과 피, 뼈와 혼이, 완전히 무기력해지고 견디기 힘든 지독한 시련을 겪고 있는 당신을 전혀 도울 수 없다는 것이 어찌나 원통하고 분한지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랬던 만델라가 신앙으로 그 고통을 소화해내기 시작하였다. 그리고는 하늘을 보고 감사하고 땅을 보고 감사하고 강제노동을 하면서도 감사하였다. 그래서 건강하였고 1990년 출옥한 이후 지금까지 온 세계인을 감동시키는 마디바가 되었다. 그가 감옥에서 나오면서 한 생각. “자유로 이어질 문을 향해 걸어가면서 나는 알았다. 내 안의 비통함과 증오를 뒤에 남겨두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감옥에 갇히게 되리라는 사실을.” 새해를 시작하면서 털 것을 털어버리라. 불용(不容)의 마음을 짊어지고 해를 넘기지 말라. 뒤를 보고 걸어서는 멀리 갈 수도 빨리 갈 수도 똑바로 갈 수도 없다. 우리 앞에 주신 푯대를 향해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