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곤 목사 (참사랑교회)
한국전 정전60주년 기념일을 일주일여 앞둔 지난 7월 18일 오전 11시. 섭씨 38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현운종(74)·조미나 부부가 땀을 뻘뻘 흘리며 화환을 들고 워싱턴 참전기념공원에 나타났습니다. 화환엔 ‘영원히 당신들을 기억합니다’란 영문문구와 함께 ‘서울대 상대 17회 일동’이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화환에 담긴 사연은 이렇습니다. 2006년 여름 배창모 전 한국증권협회 회장은 남미로 크루즈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칠레로 가는 배 안에서 그는 한 미국인 노신사를 만났습니다. 배 전 회장에게 대뜸 “코리안”이냐고 물은 이 노신사는 그렇다고 대답하자 “왜 한국인들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 하느냐”고 호통을 쳤습니다. 알고 보니 노인은 1950년 12월 흥남에서 부산까지 피란민 10만 명을 대피시켜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는 흥남부두 피란민 철수작전에 참여했던 미 해병대 참전용사였습니다. 배 전 회장은 귀국하자마자 동기회 멤버들을 만났습니다. 그러곤 동기모임에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워싱턴 참전기념공원에 매주 헌화를 하기로 뜻을 모았습니다. 때마침 배 전 회장의 용산고 동창인 현운종씨가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에서 화원을 운영하고 있어 헌화를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2009년 8월에 시작된 헌화 릴레이는 올해로 5년째 이어지고 있었고, 지난 7월 18일의 헌화가 170회째였다고 합니다(뉴욕중앙일보 2013.7.23참조)
제가 담임하고 있는 뉴욕 롱아일랜드 참사랑교회에서는 부임한 첫해부터 매해 9월, 10월 중에 지역 타민족 주민들에게 한국의 문화와 전통 그리고 음식을 체험하는 오픈커뮤니티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올해 10월 6일에 5회째를 맞습니다. 이때 특정된 2그룹은 반드시 초청합니다. 하나는 한국인 입양아들과 그들의 가족들입니다. 우리와 같은 한민족의 피를 나눈 입양아들을 어찌나 그렇게 소중하고 따뜻한 마음과 사랑으로 대해 주는 입양아 가족들을 바라보며 참 깊은 감동을 갖게 됩니다. 다른 하나는 6.25참전군인들과 가족들입니다. 5번째가 되니 의례 기억하시고 함께 오셔서 자리를 빛내주시는 어른들입니다. 무슨 몇 주년 행사에 한 번씩 초청하지 않고 매해마다 지극한 정성으로 맞아준다고 기뻐하시는 분들입니다. 그러나 마음 아픈 하나는 해마다 오시던 어른들이 눈에 보이지 않아 여쭤보면 하나님나라로 이사가셨다는 대답을 듣곤 합니다.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드는 어른들을 바라보며 깊은 감사와 더불어 살아계시는 동안에라도 더 잘 모셔야겠다고 교인들과 더불어 마음먹습니다. 제가 미국으로 이민 온 첫 지역이 코네티컷 훼어필드라는 지역이었습니다. 거기서 뉴헤이븐 예일대학까지가 30분정도여서 찾아오시는 방문객들을 모시고 자주 가곤했습니다. 예일대학 중간에 있는 한 큰 건물에 들어가면 그 로비의 벽에는 예일대학교 동문들 가운데 전사자들의 이름과 그들이 전사한 전쟁과 장소들이 적혀져 있습니다. 남북전쟁, 1차 2차 세계대전, 베트남 등등 그 가운데 영어로 쓰여진 한국전쟁, 낙동강, 소양강 등등의 이름들을 보게 됩니다. 미국에서도 명문중의 명문출신들인 그들이 생전 보도 듣지도 못한 생소한 나라 한국에 와서 그들의 젊은 생명을 바쳤습니다. 그들의 이름 앞에 설 때마다 경외감이 마음에 가득차곤 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는 한 국회의원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저는 반공주의자도 골통 보수주의자도 아닙니다. 다만 분명한 것 하나는 이념과 사상의 갈등과 대립을 떠나 역사적 현존을 기억하고 그 앞에 “감사하는 자”가 되자는 것입니다. 만일 6.25참전용사들이 없었다면 오늘 북한이 겪고 있는 기아, 빈곤, 인권 등등의 모든 문제들이 북한과 북한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오늘 나와 나의 자녀들의 문제가 될 수도 있었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되면 이러한 특징들이 나타나는데 그중 하나가 “감사치 아니하며”입니다(딤후3:1-4).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살아가시는, 우리들이 감사한 마음을 전해줄래야 줄 수 있는 시간이 별로 남아있지 않은 6.25참전군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바라보며, 그리고 내 인생의 뒤안길, 이민생활 안에 정말 감사했던 분들을 기억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립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17:17). 돌아온 한명의 문둥이! 그가 우리가 될 때, “감사의 기억 그리고 마음과 사랑의 나눔”이 올 가을 우리들의 영혼을 풍성케 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