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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제 흥에 겨운 사람은 행복하다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오래 전에 본 영화 ‘서편제’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는 노래에 미친 사나이. 그래서 굶으면서도 노래를 부른다. 주인공은 군말 없이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노래 부르는 재주가 좀 떨어지는 주인공의 남동생은 아버지의 타박을 듣다가 “이깟 노래하면 밥이 나와 쌀이 나와!”라고 대들며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한다. 아버지는 막대기로 아들을 때리며 윽박지른다. “야, 이놈아! 밥이 나온다고 노래하냐? 노래는 제 흥에 겨워 부르는 거야!” 아버지는 얼마나 노래에 미쳤는지 딸의 마음에 한이 서리도록 장님이 되게 하기까지 제 흥에 빠져 노래를 위해 살다 노래를 위해 죽었다. 당시 그 영화를 보면서 아무리 노래를 좋아한다지만 제 새끼의 눈까지 멀게 하면서 명창을 만들려는 아버지의 흥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 아버지는 노래에 미쳤다!

사도행전의 말씀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목숨을 내걸고 전도하는 모습 속에서 이 흥을 느낀 적이 있다. 루스드라에서는 복음을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음의 선을 넘나들면서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면 많은 환란을 당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오히려 처음 믿은 성도들을 독려한다. 그리고는 다시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의 기세등등한 성들을 되찾아 가면서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새가족’들을 양육한다(14장). 그런가하면 유럽의 첫 성 빌립보에 가서는 복음을 전하다가 무수히 매 맞고 깊은 감옥에 들어가지만 한밤중에 기도하며 찬송함으로 죄수들이 듣게 된다. 그 결과 옥문은 열리고 수갑이 풀어지는 기적이 일어나고 감옥의 간수 가족 전체가 예수님을 믿는 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물론 서편제의 흥과 바울의 흥은 유가 다른 것이지만 두 사람 다 자신의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는 모습은 감동이 되었다. 사역의 동기는 다양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제 흥에 겨운 것이 되어야 한다.

독일의 설교학 교수 루돌프 보렌은 그의 책에서 “설교는 기쁨이다”라고 정의했던 말이 신선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설교와 기쁨이 어떻게 연결되어야 할지 언뜻 쉽지 않았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깊은 공감이 생겼다. 보렌은 설교란 복음을 깨닫고 감격하여 그것을 즐거이 표현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 글을 근거로 가만히 생각해보니 설교는 기쁨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성경의 결론이라면 당연히 설교도 기쁨이어야 하고 말씀을 받는 이도 언제나 기쁨을 가져야 마땅하다. 이렇게 기쁜 일을 위해 쓰임 받으니 설교자의 삶도 한 마디로 기쁨의 삶이다. 이렇게 설교는 기본적으로 제 흥에 겨운 것이 되어야 한다.

언젠가 설교를 마치고 나오니 한 교인이 작은 선물을 손에 들고 찾아왔다. 조그마한 액자였는데 그 안에는 작은 탁상용 시계가 있었고 밑에는 목회자가 성도들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표현하는 글이 있었다. 짠한 감동을 느끼다가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 좋아서 하는 일인데!’ 과연 그렇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이다. 설교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 그리고 30분도 넘는 시간 동안 사람들이 설교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러므로 설교자는 설교자라는 자체로 감사해야 하며 명예나 부와 같은 다른 것들을 탐내서는 안 된다. 어디 설교자뿐인가! 교회의 대부분의 일들은 제 흥에 겨운 자들의 봉사다. 이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교회 일처럼 의미 없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알아주기는커녕 일을 열심히 해도 욕이 돌아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자신의 물질과 시간을 다 바쳤어도 누구 하나 인정해주기보다는 자칫 교만하고 잘난 척하는 자로 비쳐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시험들 일도 없지만 헌신한 사람들에게는 시험이라는 마귀의 올무가 늘 도사리고 있다. 그래도 그런 남모르게 흘리는 땀과 눈물들 때문에 오늘 교회가 서 있다. 그리고 아무도 몰라준다 해도 하나님은 아신다. 노력에 비해 성과는 미미할 수도 있다. 칭찬 대신 비판과 비난이 봇물을 이룰 수도 있다. 그래도 제 흥에 겨운 사람은 행복하다. 그것이 교회사역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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