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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주님! 이제 우리가 당신의 팔이 되겠습니다

은희곤 목사 (참사랑교회)

교회 안에 “모든 사람”(Everybody), “어떤 사람”(Somebody), “누구라도”(Anybody), “아무도”(Nobody)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네 사람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일이 하나 생겼습니다. “모든 사람”(Everybody)이 그 일을 하도록 요청받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어떤 사람”이 그 일을 하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일은 “모든 사람”이 “어떤 사람”을 비난하고 애초에 “누구라도” 할 수 있었던 그 일을 “아무도” 하지 않음으로서 끝났습니다. 마지막 보고에 의하면 이 네 사람은 계속해서 여전히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며 회의(?)를 거듭하고 있고, 그래서 그 교회는 지금까지 시작한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조금 복잡한 “....body”의 이야기이지만, 혹 “내”가 그 4명중 1명이 아닐까? 바로 “이 교회”가 내가 섬기는 교회는 아닐까를 스스로 물어보게 됩니다. 그리고 비록 “아무도(Nobody)” 안할지라도 “모든 사람(Everbody)”에게 열려져 있어 “누구라도(Anybody)” 할 수 있는 겸손과 섬김의 기회 앞에 “어떤사람(Somebody)”인 “내”가 손들고 나가는, “그런 내가 모인 곳”이 “교회”(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여야 하지 않을까요?

예수님은 생각이 많아 시작도 못하는 “똑똑말꾼”들이 아니라 작은 일에 충성하는 “헌신일꾼”을 부르십니다(눅10:2).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 “말로 운영”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역사(골4:11)하는 “일꾼”들이 모인 곳이어야 합니다. 교회는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이 시대(마1:17)에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재현”(Representation)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이 시대에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삶의 모습이어야 하나를 고민하며 나누는 “거룩한 욕심”이 본질로 그 중심에 살아있어야 합니다. 미국에서의 이민목회 10여년이 흘렀지만, 한국에서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 시절을 거쳐 목사안수를 받고 20여년 동안 한국에서 교회를 섬겼던 나에게는 아직도 이민목회는 꽤나 낯섭니다. 여러 낯설음들이 있지만 “똑똑말꾼“이 많다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이에 대해 이민목회 고참 목사님들에게 여러 문화, 환경, 상황적 분석들을 이러저러하게 다 들어보았지만,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는 아직도 무척이나 거북스럽습니다. 아닌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똑똑말꾼들”은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합리화라는 ”토“를 매우 잘 붙이거나, 아닌 줄 알면서도 하나님께 ”익스큐즈“하며 자기 고집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자꾸 하다보면 습관이 됩니다. 점점 그렇게 굳어가 ”성서적 신앙“이 아니라 어느덧 자기에게 형성된 그 습관을 믿는 ”자기신앙“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회개치 않는 고집“(롬2:5)에 빠져 스스로 교만해져 점점 ”하나님 이야기“와는 거리가 멀어져 진리를 잃어버리고 ”자기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변론과 언쟁을 즐겨하게 됩니다(딤전6:4). 겉보기에는 회칠하여 깨끗한데 속은 다 썩어가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딤후 3:5)가 되고 맙니다. ”똑똑말꾼“은 ”자기“를 드러내려고 애쓰고, ”헌신일꾼“은 ”하나님“을 드러내려고 애씁니다. 우리들은 나의 신앙, 나의 인생 이야기 속에 누가 드러나나요?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에 “마르코스키르케”라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그 교회의 뜰에는 성도들이 정성으로 모아 세운 예수님 동상이 서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보니 다른 곳은 다 괜찮은데 동상의 두 팔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두 팔이 잘려나간 예수님 동상을 놓고 교인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이 동상을 두고 다른 장소에 새로 만들 것인지, 아니면 잘려나간 팔만 만들어 새로 붙일 것인지, 아니면 이번 참에 동상을 철거할 것인지? 등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다가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 동상을 두 팔이 없는 모습 그대로 세워 두기로 했습니다. 그 대신 그 두 팔 없는 예수님 동상 앞에 이런 팻말을 붙이기로 했습니다. “주님! 이제 우리가 당신의 팔이 되겠습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팔이 되어 교회와 세상 그리고 하나님나라를 섬기는 “추수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우리가 교회의 중심이 되고 점점 더 많아져, 생명력있는 교회 본질 회복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그리고 그러한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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