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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독한 십자가를 피하지 말라!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지난 달 우리교회 사역자 가족들이 샌디에고를 여행하였다. 해마다 사역자수련회를 계획하고 실행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못하였기에 아쉽게 생각했는데 생각지 못한 기회가 마련되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내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맛있는 음식을 즐기면서 좋은 시간을 가졌다. 사역자 가족들이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고 재미난 이야기들이 많이 생기게 마련이지만 이번에는 샌디에고에서 오래 사신 분의 덕택에 그 지역의 명소들을 직접 찾아보고 그곳과 관련된 히스토리까지 알게 되었기에 더욱 유익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감동이 되었던 것은 솔레다드 마운틴(Soledad Mt.)의 십자가였다. 10m가 훨씬 넘어보이는 십자가 밑에 서서 샌디에고 시내의 거의 전 지역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십자가 주변에는 암각사진으로 전몰병사들의 사진과 약력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들은 대개 한국전쟁을 위시하여 1, 2차 대전과 베트남 전쟁 등 각종 전쟁에 참여한 분들이다. 아름다운 풍광만큼이나 십자가가 주는 영적인 도전과 의미가 커서 십자가 밑에 서니 자연스럽게 주님과 우리의 인생을 생각하게 되었다. 특히 그 십자가의 수난사를 들으면서 도전이 되었다.

1913년에 샌디에고 지역의 경건한 사람들은 시내에서 가장 높은 곳, 그래서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솔레다드 마운틴에 십자가 신앙이 늘 기억되기를 바라는 취지로 나무십자가를 세웠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십자가는 도난당하고 말았다. 아마도 누군가 십자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은 이에 의해 십자가는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1923년에 다시 십자가를 세웠는데 수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강풍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하여 1934년에는 바람이 아무리 불어도 날아가지 않도록 콘크리트로 십자가를 세웠다. 하지만 십자가는 끊임없이 시련을 당해야만 했다. 1986년부터 사람들이 십자가를 보기 싫다고, 아침마다 일어나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것이 고역이라고, 미국과 같이 종교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십자가를 세워놔서 그것을 바라봐야만 하는 것은 엄연한 종교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시장이 바뀔 때마다 소송을 걸었다. 무려 8차례나! 그래서 그 십자가는 최근까지 여러 차례 없어질 위기를 당하였다.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전몰장병기념사업을 함께 벌이면서 십자가를 없애자는 분위기가 얼마간 수그러들었지만 십자가의 장래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태다.

집에 와서 스패니시로‘ 솔레다드’란 단어는 고독(solitude)이란 뜻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고독한 산의 고독한 운명의 십자가! 십자가는 고독이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도 고독하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십자가는 자기의 죄를 지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십자가를 보기도 싫어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은 끔찍하게 여긴다. 다만 장식용으로 목이나 귀에 걸며 만족할 뿐이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위기다. 그러나 고독한 십자가는 곧 빛나는 영광으로 이어진다. 십자가가 있기에 면류관도 있는 것이다!(Yes Cross, Yes Crown).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고 또한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라고 명하셨다. 참된 주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는 자마다 십자가를 져야만 한다.

지난주에 만난 내 친구 선교사는 나와 함께 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사역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다. 내가 선교지를 떠난 후에도 그는 무명으로 선교사역을 위해 조용히 헌신하였다. 그야말로 이름도 빛도 없이 자기가 사는 오지의 영혼들의 제자화만을 꿈꾸며 헌신한 형제다. 그가 쓰는 편지는 언제나 공개할 수 없는 것들이니 그가 맺는 사역의 열매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뿐이다. 은사도 많고 인격도 훌륭하고 여러 면에서 흠잡을 것이 없어서 교회들의 청빙을 여러 차례 받으면서도 끝내 선교만이 자신의 갈 길이라고 물러설 줄 모르는 그는 고독한 십자가를 붙잡고 가는 자다. 그가 떠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외로운 십자가를 지고 전진하는 이들 때문에 이나마 한국교회가 명맥을 유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거친 세속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교회와 이민교회가 표류하고 있는 이유 역시 고독한 십자가를 외면하기 때문이라는 힘든 마음이 몰려들었다.

솔레다드 마운틴을 내려와서 들른 곳이 포인트 로마 지역에 있는 샌디에고 국립묘지(Fort Rosecrans National Cemetery)였다. 수십만 평은 됨직한 샌디에고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리에 일직선상으로 서있는 수십만 개의 대리석 비석들이 전몰군인들의 희생을 웅변적으로 보여주었다. 과거에 그들이 희생했기에 현재 우리가 평화를 누리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고독한 십자가가 있어야 다음 세대에 희망이 존재한다. 고독한 십자가를 피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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