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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상생(相生)의 신앙

은희곤 목사 (참사랑교회)

오래 전 중학교 때 기타를 처음 배웠습니다. 복음성가도 불렀고 팝송 포크송도 열심히 불렀습니다. 당시 불렀던 포크송 가운데 “작은 연못”이라는 애창했던 노래가 있었습니다. 서슬 시퍼렀던 군사독재시절에는 한동안 남한과 북한을 연상한다는 이유 때문에 금지곡으로 분류되어 캠퍼스와 언더그라운드에서 더 많이 불리웠지만 그 이후 금지곡에서 풀려서 “긴 밤 지새우고”로 시작되는 “아침이슬”과 더불어 한국가요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평가와 함께 지금까지도 많은 젊은이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곡입니다. 전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직도 이 곡을 참 좋아합니다. 노랫말이 전해주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먼 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 마리 살고 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 산 작은 연못/어느 맑은 여름 날 연못 속의 붕어 두 마리, 서로 싸워 한 마리는 물위에 떠오르고/여린 살이 썩어 들어가 물도 따라 썩어 들어가 연못 속에선 아무 것도 살 수 없게 되었죠/깊은 산 오솔길 옆 자그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죠.”

난 이 노랫말을 무척 사랑합니다. 그래서 신학교 시절에 주일학교, 중고등부를 지도할 때나, 목사가 되어 어른들 성경공부나 수련회를 가서나 가끔 이 노래로 역할극을 한 번씩 해보곤 했습니다. 남들보다 내가 힘이 있다고, 남들이 가지지 못한 무엇을 내가 가졌다고 내 고집만 부려 다른 사람들과 싸워서 이겨야 된다고, 지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마음과 생각을 아무리 감추려고 애를 써도 습관처럼 내 일상에서 무의식중에 툭툭 튀어 나와 주변과 부대낍니다. 남을 짓밟고 이겨야 적성이 풀리고 위안이 되는, 무언의 중압감으로 상대방이 위축되는 걸 보아야 자기 스스로 평화로운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결국 내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부터 연못물은 점점 썩어 들어가 싸움에서 이긴 “나”도 결국에는 살지 못하게 되었다는 노랫말은, “나”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소중한 지혜를 그리고 “내”가 중심 되는 마음에서 “우리”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전환의 단초를 제공해 주고 있고, “나만의 인생”에서 “우리라는 공동체”를 바라보며 내가 정작 포기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는 기회를 진솔하게 주고 있습니다.

나도 중요하지만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연못물도 아울러 함께 깨끗해야 합니다. 연못물이 썩으면 내가 아무리 살려고 발버둥 쳐도 역시 따라 썩어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도 중요하지만 “가정이라는 연못물”도 깨끗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내 신앙생활도 중요하지만 “교회라는 연못물”도 썩지 않고 더 맑아질 수 있도록 땀 흘려야 합니다. 우리교회도 중요하지만 “뉴욕한인사회”라는 연못물도 맑고 깨끗하게 유지, 관리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남편으로, 아내로, 자녀로, 그리고 친구로, 동료로 이웃으로 만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인 교회를 섬기는 목사로, 성도로 우리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만남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함께 사는 연못물을 가면 갈수록 더욱더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가라는 “상생의 인생과 신앙을 훈련시키시는 현장”입니다. 바울사도는 말합니다. 약하고 부족한 지체들을 더욱더 존귀히 여기라고.... 몸 가운데 분쟁이 없도록 여러 지체가 서로 잘 돌보라고... 기쁨과 아픔을 함께 느끼고 나누라고...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을 위해 부름받은 지체라고...(고전12;12-27). “나”보다 “교회”를 먼저 생각하며 내려놓을 거 내려놓고, 나눌 거 나누고, 섬길 거 섬겨 “교회의 유익과 건덕”(고전14:12)을 구하는 믿음입니다. “나와 너”가 만나, 그 만남이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그래서 우리 안에 “생명”이 역사하는 “상생(相生)의 신앙”이 우리들의 인생이기를 소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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