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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언어의 격을 높일 때이다

원종훈 목사 (시카고 그레이스교회)

말과 글은 표정이나 몸짓과 함께 우리의 일상에서 통용되는 중요한 표현 도구이자 소통의 기본수단이다. 우리는 이것을 포괄적으로 언어라 한다. 언어가 다르면 서로 통하지 않기에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말과 글을 배운다. 더 많은 사람들과 통하려는 마음에서 자기나라의 말을 배울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다른 언어들도 배운다. 결국 갓난아기가 응얼거리며 말을 배우고, 말을 배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며 글을 배우는 것도, 알고 보면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한 효과적인 자기 표현법을 익혀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언어는 배울 뿐 아니라 다듬을 줄 알아야 한다. 말을 한다고 다 말이 아니며 글을 쓴다고 다 글이 아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연스레 말과 글을 다듬는다. 스스로 깊이 생각하며 다듬기도 하지만 스승에게서 체계적인 훈련을 받기도 한다. 거친 말과 글에 비하여 잘 다듬은 언어는 자기 안에 있는 생각과 느낌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뿐 아니라 자기의 주장이나 신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케 할 수 있다. 말과 글 다듬는 일은 어느 한 시점에서 끝나지 않는다. 학교졸업이 언어 다듬는 일의 마침이 아니라는 것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있다. 말과 글 다듬는 일은, 분명히 말하지만, 평생 작업이다. 나이가 들고 사회적 신분이 생길수록 더욱 노력하여 그에 걸맞는 말과 글의 격을 갖추어야 한다. 간혹 그러지 못해 나타나는 사회 곳곳의 추한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말과 글은 인격의 그릇이라는 것이며, 언어는 인격을 다듬듯 계속 다듬는 것이다. 더욱이 중요한 자리에서 책임 있는 말을 할 때일수록 한번 더 다듬은 글로 말할 줄 알아야 한다.

표정과 몸짓은 말과 글이라는 밑그림에 생생하게 색깔을 칠하는 작업과 같다. 말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표정과 몸짓이 하고자 하는 말의 본말을 결정할 때가 허다하다. 같은 말이라도 조용히 미소지으며 말할 때와 인상을 찌푸리며 큰 몸동작을 반복할 때 전달받는 느낌은 크게 다르다. 말의 내용보다 말의 억양이 더 크게 전달된다는 연구결과가 뒷받침하며, 낯선 외국어를 말하는 외국인을 대할 때의 경우도 그렇다. 비록 우리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지만 그 표정과 몸짓, 목소리의 크기 등으로 말의 내용을 짐작하기도 한다. 자고로 인격자는 자신의 말과 글을 꾸준히 다듬을 뿐 아니라, 다듬은 말과 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 역시 중요하게 여긴다. 살아갈수록 얼굴에서 인격이 묻어나온다는 말이 그것이다.

아무리 잘 다듬은 언어도 현대의 익명성 앞에 무너질 때가 많다. 익명으로 자기 생각을 전하는 기회가 늘어날수록 언어는 성숙함과 거리가 먼 곳으로 간다. 그래서 자기이름으로는 할 수 없는 저급언어를 쉽게 표출한다. 가상세계 뿐 아니라 현실세계 속에서도 군중의 이름이나 혹은 익명이라는 벽에 숨어 지나친 욕설이나 의도적인 왜곡, 심지어 악의 가득한 언어로 도배하기도 한다. 그래서 잘 다듬은 인격자의 언어일수록 실명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실명언어는 개인적으로 인격을 다듬는 좋은 훈련이 되며, 공동체적으로는 좋은 관계 문화를 만들어내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만일 이름을 밝히고 할 수 없는 이야기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서도 하지 않아야 하고 만일 뒤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할 수 있어야 하며 나아가 앞에서 하지 않아야 할 말은 뒤에서도 안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 글, 몸짓, 표정 등 언어 사용에는 짧은 순간이라도 깊은 사고가 필요하다. 맛있는 밥을 짓기 위해 먼저 쌀에서 돌을 걸러내듯 밖으로 드러내기 전에 우리의 언어는 다시 다듬어져야 하며 상대방 마음에 도달하기 전에 또 다시 한 번 점검되어야 한다. 서투른 논리나 약한 명분보다는 거칠고 격한 언어가 공동체를 아프게 한다. 언어의 격을 높이면 자신의 격 역시 높아지게 되어있다. 지금은 ‘격’을 높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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