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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객관적 현실과 심리적 현실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심리학의 영역에서는 우리가 맞닥뜨리는 매일의 현실을 두 종류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한다. 객관적 현실과 심리적 현실. 여기서 말하는 객관적 현실은 현실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심리적 현실은 자신의 생각을 통해 굴절된 현실을 현실이라고 왜곡되게 받아들이면서 사는 것을 말한다. 우리 자신은 우리가 객관적 현실을 산다고 착각하지만 의외로 심리적 현실을 사는 경우가 많다. 종종 일어나는 교회 안에서의 성도들 간의 갈등 역시 심리적 현실로 받아들이기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번 싫은 사람은 무엇을 해도 다 비뚤어진 마음으로 본다. 그래서 그가 행하는 모든 행동을 다 거부하고 비난하게 된다. 이런 경우도 있었다. 아주 오래 전 이야기이지만 두 여 집사 간에 싸움이 벌어졌는데 처음에는 사실에 근거하여 비난하다가 감정이 격해지니까 무엇을 해도 비판하게 되었다. 심지어 그 사이에 끼어있는 목사가 보다 못해 각각 만나서 상대방의 입장을 설명해주고는 자제하라고 일러도 못 알아듣는 상황까지 가다가 결국에는 왜 목사가 상대방만 비호하고 편들어 주냐고 목사를 비난하기까지 하였다. 결국은 둘 다 교회를 떠났다. 심리적 현실은 자신의 생각을 통해서 나타나는 현실이다. 굴절된 자아를 통해 생각하다보니 모든 게 불편하다. 대인관계가 불안하고 두렵다. 스스로 생각이 쪼그라들고 위축당한다. 한편으로는 쪼그라들지 않기 위해 과장을 하거나 포장한다. 그래서 과도하게 행동하는 면이 생기고 허세에 빠지기 쉽다. 돌아보니 나 역시 오랫동안 심리적 현실을 살아왔다. 그래서 열등감과 패배의식으로 괴로워했고 별 생각 없이 말한 아내의 한 마디에 분노로 잠을 못 이루기도 하였고, 성도의 사려 깊지 못한 말 한 마디로 인해 사역에 대해 절망하고 모든 것을 팽개쳐 버리고 싶어 했던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객관적으로 현실을 보는 눈이 생겼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시편 144편을 묵상하다가 그 이유를 찾았다. “헛것”이고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 나를 “알아”주시고 “생각”해주시는 하나님이 그 답이었다(3,4절). 다윗은 객관적 현실을 산 대표적인 사람이다. 그는 사무엘하 7장에서 성전 건축을 거절당하고도 행복해 했다. 평상시 하나님께서 자신을 알아주시고 생각해주시는 은혜가 너무 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성소에 들어가 “앉아서” 고백하였다.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18절). 객관적 현실을 살았기 때문에 그는 항상 올바르게 상황을 판단했고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었다. 반면 사울은 철저히 심리적 현실에 머물렀다. 사울에게 다윗은 자신의 왕국을 골리앗과 온갖 적들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준 충성스런 신하다. 그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자 생각 없는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18:7)라고 노래 불렀을 때 불쾌하고 심히 노하여 다윗을 원수로 대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충성스러운 신하 다윗을 말이다!! 그것은 곧 사울의 불행으로 연결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두 번이나 다윗이 자신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켜주었지만 그의 비뚤어진 마음을 올바르게 갈무리할 수 없었다. 이미 심리적 현실에 중독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의 인생은 막을 내렸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하나님께 집중하고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믿는 자는 심리적 현실을 살지 않을 수 있다. 그런 사람은 남들의 평가에 민감하지 않을 수 있고 자신만의 생각으로, 혹은 이런저런 사람들의 평가로 작은 문제를 산더미처럼 키우지 않는다. 남들이 뭐라든 나는 나일뿐이다. 그러면 행복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생각”해주시는 것을 오늘도 깨닫기에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목회현장에서도 이렇게 객관적으로 현실을 파악하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러면 더욱 당당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 교회가 크든 작든 내 앞에 주어진 현실과 내게 맡기신 영혼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귀히 여기고 사랑하며 최선을 다하고 섬기면 언젠가 아름다운 열매들이 나타난다. 아무리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왜곡되지 않아야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을 수 있고 그런 사역자라야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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