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춘길 목사 (뉴저지 필그림교회)
성경에 나오는 세례요한은 참으로 멋진 신앙인의 삶을 산 사람이라 생각됩니다. 예수님도 그를 가리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의 삶에서 찾아보는 멋은 무엇일까요?
첫째, 세례요한에게는 확실한 삶의 목적과 소명의식이 있었습니다. 한번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의 대답이 이러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선지자도 아니라....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얼마나 멋있습니까? 그에게는 어떤 지위나 타이틀(title)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지 하나님이 맡겨 주신 사명, 삶의 분명한 목적, 위로부터 주어진 “소명의식”이 삶의 주체가 되어 살아간 사람입니다. 한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이 일을 위해 나를 이 세상에 보내셨다”고 하는 확실한 소명의식 속에 펼쳐지는 삶이 멋이 있습니다. 사람은 세 번 태어난다고 합니다. 먼저 어머니 배속에서부터 육신으로 이 땅에 태어납니다.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하나님께서 나를 향해 가지고 계시는 목적, 즉 소명을 발견하면서 사명으로 태어납니다. 영원에 잇대어지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사는 인생은 값지고 아름답습니다.
둘째, 세례요한에게는 변화를 일으키는 힘이 있었습니다. 그는 눈앞의 이익과 명예, 안전과 인기를 위해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진리 위에 서서 담대하게 세상의 부조리와 종교의 타락, 지도자들의 부패에 도전하였습니다. 무력이나 권력의 도전이 아니라 가장 약해 보이는 소리의 도전이었습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그러나 그의 외침에는 놀라운 힘이 있었습니다.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뒤집어 놓았습니다. 수많은 백성들, 지도자들이 그에게 나아와 회개의 세례를 받게 되는 엄청난 변화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의 소리는 진리의 외침이었기 때문입니다.
참 멋진 인생은 진리 위에서 걸어가는 인생입니다. 재물에 어두워지지 않는 총명한 눈동자, 부정과 타협하지 않는 청결한 마음, 불의의 권력에 굴하지 않는 절개 있는 의지, 죽음도 개의치 않는 불변의 신앙이 진정 멋있는 신앙, 멋있는 인생을 창조해 냅니다. 이천년 전 불의한 분봉왕 헤롯을 향하여 진리를 외치다가 생명을 빼앗기고 쓰러져간 세례요한이지만 역사는 그가 궁극적인 승리자임을 증거하고 있고, 그는 진정한 삶의 멋을 오늘에까지 전해주고 있습니다.
셋째, 세례요한의 멋의 극치는 그의 겸손에 있습니다. 그는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며, “나는 그의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말하였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시대의 한계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당시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을지라도 자신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는 자이지 결코 메시야가 될 수 없음을 자각하고 예수의 공생애의 시작과 함께 자신은 시대의 중앙무대에서 조용히 물러나는 겸손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때로 인기와 명예에 눈이 어두워 스스로 메시야가 되고, 영원한 통치자로 군림하려고 하다가 추악한 말로를 맞이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주어진 역사의 무대에서 최선을 다하여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고 스스로 물러서면서,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의 관심과 초점을 예수께 맞추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자신은 낮아지고 사라지는 그의 겸손에서 우리는 진정한 신앙인의 멋을 발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