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시론

가정인가, 교회인가?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오래 전 부교역자로 사역을 하던 시기에 교역자 수련회를 참석할 때였다. 담임목사는 목회를 매우 훌륭하게 감당하던 분이었다. 어떤 부교역자가 당시 가끔 화두가 되곤 하던 질문을 담임목사에게 던졌다. “목사님은 가정과 교회의 일이 서로 충돌할 때는 어느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그 때 담임목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나는 요즘 젊은 목회자들이 가정과 교회 중에 가정이 더 중요하고, 교회와 가정 중에서 가정을 선택한다는 말을 공공연히 하는 것을 좋게 보지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때가 80년대 한국적 상황이었으니 기성 목회자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대답하였을 것이고 그런 정서는 조금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충정으로 해석되던 시기였다. 세월이 많이 지나가면서도 그 때의 그 질문에 대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 스스로 자문하곤 하였다.

내가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최근에 교회가 정서적으로 건강한가, 하는 문제를 놓고 어떤 이와 토론을 하다가 그 유명한 월드비전의 설립자 밥 피얼스 목사의 일대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월드비전은 세계 103개국에서 5천만 명에 이르는 사람을 섬기는 엄청난 크리스천구호개발기구가 되었다. 1950년에 월드비전을 세울 때 밥 피얼스는 한국전쟁에서 고아가 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소박하게 시작하였다. 예수님을 위한 열정으로, 기아와 질병이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뜨거운 마음으로 무장한 밥 피얼스는 영혼을 위하여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의 가난하고 작은 자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놓은 참다운 사마리아인으로 평가받곤 하였다. 그런데 그의 이런 태도는 가족들에게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심지어 딸이 자살을 기도하기 직전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사랑을 필요로 했을 때 별 이유도 없이 찾아가지 않았고, 그 결과 몇 년 뒤에 딸을 잃는 비극을 경험해야 했다. 그는 하루 18시간이나 일하고 온갖 고난스런 삶을 살았지만 세상을 떠날 때는 모든 직계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하였고, 심지어 월드비전의 이사진과도 갈등을 피하지 못해 면직당하기까지 하였다.

목회자에게 교회가 가정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전 세대 목회자들은 어찌 보면 다 그렇게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금의 세대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을까? 그런 경우 정서적인 안정감이 보장될 수 있을까? 또한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않은 목회자가 안정적인 교회사역을 이룰 수 있을까? 목회자에게나 평신도지도자들에게 가정은 정서적인 안식처다. 가정의 안정되어야 사역도 건강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교회가 홍역을 치르는 일이 있었다. 평신도 지도자 몇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다가 패가 나뉘어지는 내홍을 겪었다. 사실 일의 발단은 매우 사소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더니 나중에는 서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극단적으로 힘들어하는 모습 앞에 속수무책인 목회자의 한계를 경험하였다. 그 일을 겪으면서 왜 이렇게 별일 아닌 것이 교회를 뒤흔들 정도로 문제가 커졌는가, 면밀히 관찰해보니 그 일에 휘둘린 사람들마다 정서적인 안정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정서적으로 젖먹이(다른 사람의 정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단계) 내지는 어린아이(의견차이를 공격으로 해석하여 쉽게 상처를 받는 단계, 성숙한 토론이 없고 꼭 싸움으로 변한다)의 단계에 머물러 있는 자들이었다. 정서적으로 어른(피해의식에 젖지 않고 상대가 어떻든 수용할 수 있음)이 있어야만 싸움이 종식될 텐데 어린아이들끼리 있으니 싸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터. 오늘날 목회현장은 얼마나 성숙한 대처를 필요로 하는가! 이런 성숙한 사역을 위해서도 목회자의 가정에 안정은 필수적이고 목회자들이 더욱 가정을 소중히 여기며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정도 교회도 다 얼마나 소중한 공동체인가? 교회를 잘 섬기기 위해서라도 가정을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모든 사람은 결혼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히13:4).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