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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얼음냉수 같은 충성된 사람

송상현 목사 (로스앤젤레스장로교회)

더위가 살그머니 고개를 숙이는 듯 하더니 다시 수은주가 95도를 넘나드는 그야말로 불볕더위입니다. 햇볕을 먹고 사는 식물들도 너무나 뜨거운 햇볕에 잎을 늘어뜨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폭염’이라고 모두들 시원한 곳을 찾아다닙니다. 이런 때면 가장 간절한 것이 ‘시원함’입니다. 식욕이 떨어져 찬 것만 찾는 아이들 같이 음식도 얼음이 둥둥 떠 있는 “냉면”이 생각나는 그런 날씨입니다. 이럴 때 시원한 음식도 그립지만 우리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사람도 그립습니다. 아열대 기후인 이스라엘의 추수기는 무더위 속에서 일해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습니다. 땀으로 뒤범벅이 되고 목이 마르다 못해 타는 것 같은 갈증을 느끼는 사람에게 얼음을 띠운 냉수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을 이처럼 시원하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도 시원함을 주는 것입니다.

충성! 생명을 다하는 충성! 이것은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분에게 드릴 수 있는 최상의 시원함입니다. ‘충성(忠誠)’이라는 말을 사전에서는 ‘진정에서 우러나는 정성’으로 풀이합니다. 한자어의 모양새도 ‘마음 중심으로 말을 이루는 것’입니다. 즉 주인의 명령, 뜻에 대하여 중심에서 우러나는 마음으로 수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에게 일을 맡긴 주인의 뜻을 올바로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그러나 거짓 충성도 있습니다. 발음은 같지만 말씀이 빠진 ‘충성(忠成)’입니다. 인생의 주인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다는 명목아래 교묘하게 자신의 야망을 성취해가며 세상의 온갖 좋은 것을 누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거짓, 탈세, 부도덕과 부정한 행위 등 세상에서 볼 수 있는 행태가 거룩한 하나님의 교회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지탄을 받으면서도 자신들은 이제껏 충성되게 일했다고 변론합니다. 누구를 위한 충성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원하시는 충성도 내가 지금 머물고 있는 삶의 자리에서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의 생활에 대하여 얼마나 충성되게 일하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보시고 평가하시는 것은 우리의 외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마음 중심으로 자원하여 행하는 거짓 없는 성실함을 보시는 것입니다.

형식을 뛰어넘어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종교 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와 요한 칼빈의 충성을 보고 싶습니다. 선교를 위해 이방 땅인 조선에서 생을 마감하고 양화진에 묻힌 수많은 선교사들의 충성을 기억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것에도 머리를 숙일 수 없다는 신앙의 절개를 지키신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적 충성을 그리워합니다. 삶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열방에서 복음을 전하느라 애를 쓰는 셀 수 없이 많은 선교사들의 충성을 보면서 감사를 드립니다.

이러한 충성스러움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드리는 것이며, 성도들과 많은 사람들을 시원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더움과 갈증을 잊게 하는 얼음냉수 같은 신앙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충성 되게 일함으로서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드릴뿐만 아니라, 생명의 면류관까지 예비하는 복된 삶이되시기를 바랍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잠 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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