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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캡티니티스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1982년 1월 13일에 미국의 워싱턴 내셔널 공항에서 막 이륙한 에러 플로리다 여객기가 꽁꽁 얼어붙은 포토맥 강에 추락해 78명이 목숨을 잃었다. 원인이 무엇인지를 조사하던 중 블랙박스에 담긴 내용을 분석하면서 조사팀은 경악을 금치 못한다. 부기장이 기장에게 비행기 뒤편 날개 상판에 얼음이 붙어있는 사실을 발견하고 살펴보기를 건의하였는데 기장은 이륙해야 한다는 말로 부기장의 제언을 묵살하고 이륙을 감행한 결과였다. 기장이 부기장의 주장에 제대로 귀를 기울였다면 사고는 미연에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웃라이어’를 쓴 맬컴 글래드웰은 수많은 항공기 사고가 조종실 내의 의사소통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하였다. 비행기 승무원들 사이의 위계질서로 인해서 부기장이 기장의 잘못된 판단에 대하여 직언하기가 어렵고 기장 역시 부기장의 조언을 무시하기 일쑤라는 것이다. 이렇게 조종사들이 기장(captain)의 권위에 짓눌려 제 역할을 못하는 현상을 캡티니티스(captinitis)라 한다. 그런데 이런 문제는 항공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병원 간호사실 22곳에 전화를 건 뒤 의사를 사칭하고 무허가 약품을 특정 환자에게 주사하라는 지시를 내려봤다. 그런데 놀랍게도 21명이 아무 이의 없이 약품을 꺼내러 갔다. 의사들의 권위가 워낙 크다보니 간호사들에게 맹목적인 복종이 몸에 밴 것이다. 심리학자인 로버트 치알디니는 이러한 독불장군식 리더십이 캡티니티스를 초래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스스로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리더일수록 이런 현상은 자주 일어나는 것이 우리 공동체들의 현실이다.

예배당을 새로 구입하고는 이전의 구조를 개편하여 새롭게 나아가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그중 한 가지 결심한 것이 금요일 저녁에 모이던 구역모임을 주일예배 이후로 바꾸는 것이었다. 이전에는 작은 예배당 건물에서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는데 이제 공간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좁게라도 각 구역들이 흩어져서 소그룹 모임을 가질 수 있는데다가 금요일 저녁에는 영성집회를 가져서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가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또 교회에서 점심을 들고난 후에 구역모임을 가지면 교인 가정의 부담이 줄어 여러 가지 유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당회에서 찬성을 했으니 별 무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고, 풀타임 중심의 전임교역자 회의에서 역시 반대가 없었고, 구역장들을 소집하여 계획을 발표하고 이렇게 진행하겠다고 하였는데 좋겠다는 분들과 문제점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었는데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애초의 계획은 순항을 거듭하여 이윽고 주일날 발표에 이르렀다. 그 후 주일학교 사역자들과 회의를 하는 중 이 문제를 이야기하였더니 그들 역시 반발은 못했지만 표정들이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허심탄회하게 말하게 했다. 그랬더니 우리의 건물이 아직은 어린이들이 충분히 놀 수 있지 못하고, 또한 아침에 교회에 나온 어린이들이 오후까지 지내는 것은 어렵고 청소년들을 통제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라는 등등의 문제들이 산처럼 제기되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다시 한 번 점검해보니 아무래도 이 계획을 실행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장로님들에게 부터 구역모임을 원래대로 하겠다고 하였더니 대부분 하시는 말씀. “그게 좋을 겁니다!” 나는 되물었다. “그럼, 왜 첨부터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하니까 “교회당 이사하고 목사님이 의욕적으로 해보겠다고 하시는 안건을 어찌 해보지도 않고 반대하겠어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장로님들을 비롯한 평신도 지도자들의 나에 대한 배려에 감사한 생각이 들면서도, 내 목소리가 너무 커서 그분들이 반대하지 못하고 무리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행되었다는 사실에 죄송함과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돌아보니 내가 안건을 낸 것에 대해서 내 아내나 별 부담없이 반대할까(이번 일은 아내는 반대했는데 묵살했다), 심지어 장로님들도 쉽게 반대할 수 없는 것이 교회의 분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고 여기는데도 이러니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목회자가 권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권위주의는 극복해야 하고, 교회가 성령께서 이끄는 성령공동체로써 주님이 주신 목표를 향해 담대하게 나아가야 하면서도 성도들과의 소통을 확보해야 사역을 그르치지 않으니 권위를 가진 목회자가 더욱 낮아지는 마음으로 소통에 힘써야 교회가 교회다워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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