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시론

올림픽 소감

원종훈 목사 (시카고 그레이스교회)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12일까지 열렸던 제 30회 런던올림픽이 보름간의 일정을 마치고 그 화려한 막을 내렸다. 올림픽 앞에서 종교와 사상이 손을 잡았고, 지방색이나 정치적 성향은 초월되었으며, 각 나라 선수들이 보여준 위대한 드라마에 현안도 잠시 잊고 박수치며 즐거워할 수 있었다. 이제, 선수들은 앞다투어 자기나라로 돌아갔다. 하지만 한여름을 달궜던 열기가 식으려면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만 같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나라 밖에서 거둔 역대 최고의 성적 때문만이 아니다. 올림픽 참가 이후 64년 만에, 그것도 일본을 이기고 금보다 귀한 동메달을 딴 축구열기가 그렇고, 이른바 비인기 종목과 서구독점 종목에서의 통쾌한 약진이 가져다 준 감흥은, 정말이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올림픽 같은 지구촌축제를 볼 때마다 마음 한켠에 남는 아쉬움이 있다. 우선 승자와 패자에 대한 고착된 인식이다. 승패로 갈라지는 승부의 세계는 냉엄, 냉혹, 냉정하다고들 한다. 메달 유무에 따라 명암이 크게 갈릴 뿐 아니라, 이른바 노메달 선수들은 다시 몇 년이 될지 모르는 깊은 그늘로 들어간다. 한국에 진 일본축구선수들에게 헤엄쳐오라 했다는 것은 내 나라 이야기가 아니지만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아무리 국가적 자존심이 걸렸거나 승부욕이 강하다 해도 이제는 승패, 그리고 승자와 패자에 대한 사려깊은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승과 패, 메달의 유무, 혹은 메달의 색깔이 선수의 모든 것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에게는 우리에게 보여준 단 하루 혹은 몇일 간의 모습보다 훨씬 더 오래된 세월에 남긴 땀과 눈물이 있다.

사실, 올림픽에 나오는 국가대표선수 정도면 실력차이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집중력, 게임운영, 컨디션 등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실수하지 않는 것도 실력이긴 하지만 단 한번의 실수로 4년간의 수고와 인내가 마치 수포로 돌아간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는 매우 안타깝다. 메달만 없었을 뿐이지 개인의 실력은 향상되었고 목표를 향해 정진했으니 감사한 일이며, 또한 전문 분야의 역사 발전에 조금이라도 기여했으니 된 것이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도 승패나 메달유무에 상관없이 그들의 지난 4년을 기억해주어야 할 것이다.

올림픽 참여정신도 그렇다. 어린 시절, 체전을 중계하던 아나운서들의 ‘자기고향을 빛내기 위해 나온 선수들’이란 표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금처럼 특별 포상금이나 영광의 기회가 크지 않았으니 자기고장을 위해 참여했다는 말이 맞다. 올림픽도 그랬을 것이다. 내나라 이름을 빛내면 되었다. 그래서 일제치하였지만 일장기가 아닌 태극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고, 애국가가 울려퍼질 때 목이 메어 끝까지 부를 수 없었던 것이다. 시대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언제부턴가 달라졌다. 메달의 색에 따라 명예와 부가 한꺼번에 보장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성공’을 위해 올림픽에 나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들기도 한다. 고생한 선수들에게 보상이나 격려가 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만 만일 그것을 목표로 참여한다면 적어도 올림픽정신은 실종된 것이다. 나라를 위해 뛰는 순박한 마음이 아쉽다. 개인만이 아니다. 올림픽이 소수강대국의 국력자랑 기회가 되지 않아야 한다. 과학적 훈련은커녕 기본적인 선수선발이나 참여경비를 걱정하는 나라들이 아직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경기종목결정이나 경기의 룰조차도 강대국들이 힘의 논리로 정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약소국도 모처럼 어깨펴고 함께 뛰어 노는 자리가 되도록 배려해주어야 한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스포츠외교 필요성을 느꼈다는데, 이 일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다면 한국선수들을 대변하는 한반도스포츠외교에 그치지 말고 올림픽정신이 살아나는 지구촌스포츠 외교를 해야 할 것이다.

어찌 올림픽뿐이겠는가? 교회 안에서도 보이는 성과나 업적 때문에 사람이 구별되어서는 안될 것이며, 또한 누구나 할 것 없이 하나님나라와 소속 교회를 빛내려는 사명의식으로 충만해야할 것이다. 이번 올림픽에 뛴 모든 선수들과 그들을 위해 선수보다 더 수고한 분들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또한 각 지역 교회와 우주적인 하나님나라를 위해 땀과 눈물, 그리고 목숨까지라도 내어준 모든 무명의 성도들에게 힘찬 기립박수를 보낸다.

Leav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