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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나의 멘티는 누구인가?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목회자에게는 이사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거운 책 박스들 때문입니다. 그 책들을 옮기는 것은 고사하고 박스들을 구해다가 싸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그래도 이사할 시간이 다가오기에 급한 마음으로 짐을 싸다가 툭 떨어진 ‘수신편지’라는 큰 봉투 하나를 펴들게 되었습니다. 제목을 써놓고는 오랫동안 잊고 지내면서 그것이 어디 있나 궁금하던 차에 발견한 것입니다. 대개 옛날에 받은 편지들의 묶음입니다. 그중에 봉투의 가장자리에 빨강 파랑으로 되어 항공우편임을 알게 해주는 편지가 있어서 대번에 내가 찾던 편지임을 알았습니다. 그 편지의 발신인은 내가 평생 멘토로 생각했던 분, 나를 위해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도하셨으나 지금은 고인이 된 무명의 선교사님이었습니다. 아프리카 남단에 선교사로 가서 오래 계셨기에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잘 만나지 못했고, 또 외롭게 선교지에서 갑작스레 돌아가셔서 생의 작별도 나누지 못한 분입니다. 나의 고교시절 때부터 교회의 전도사님으로 처음 만나 친분을 쌓은 후 선교를 떠나시기 전까지 자연스럽게 멘토(mentor)와 멘티(mentee)의 관계로 자리 잡은 분입니다. 나 역시 선교지로, 미국으로 옮겨 다녔기에 서로 만날 수 없었고, 그랬기에 수십 통의 편지가 오히려 남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는 펜으로, 혹은 워드프로세서로 대여섯 페이지나 되는 장문의 글들이 많습니다.

편지뭉치에서 하나가 툭 떨어져 무심결에 맨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읽어 내려갔습니다. 펼쳐들고 보니 처음 편지를 받았을 때 내용을 정성들여 읽기 위해 연필로 문단마다 제목을 써가면서 읽은 흔적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 나름대로 그 말씀들을 명심하고자 노력했던 것입니다. 그 편지에는 여러 가지 주제의 글들이 담겨 있었는데 하나같이 선배목사로서 후배목사인 나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긴 내용들이었습니다. “목사는 물질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듯이 시간의 십일조(하루 2시간 24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즉 말씀을 연구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하루의 십분의 일은 가져야 목사다운 목사가 되니까 어떤 경우에라도 시간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라.” “영어를 잘하려면 영어로 기도문을 써서 그것을 반복하여 기도를 드리며 외워라.” “체력을 관리하는 일을 위해 일주일에 5회 정도는 꼭 뛰어라. 나는 준비체조, 조깅, 오리걸음, 푸시엎, 마무리체조 등 전부 합해서 40–50분 정도를 쓴다.” 모든 이야기들이 마음에 와 닿는 내용이었습니다. 돌이켜 보니 이중에 실천하고 있는 것이 너무 적어 부끄러웠지만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짚어주는 듯하여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런데 충격을 받은 것은 마지막 한 마디였습니다. “하나님의 것이다. 등록하는데 보태써라.” 십수년 전 미국에서 어렵사리 공부하고 있는 나에게 선교비 중 일부를, 그것도 평소에는 가난을 벗삼아사는 청빈한 목사님이 그 당시로서는 적지 않은 액수를 보내준 것입니다. 나는 그 편지를 읽다가 드디어 울고 말았습니다. 나에게 그런 사랑을 베풀어주신 은혜가 생각나서 울었고, 이제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신 선배님이 세상에 계시지 않아서 울었고, 나 역시 후배 목회자들에게 그런 선배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내 모습이 부끄러워서 울었습니다.

달라스신학교의 헨드릭스 교수에 의하면 멘토란 다른 사람을 성숙시키고 또 계속 성숙해가도록 도와주며 그가 그 자신의 생애의 목표를 발견하도록 도와주는데 헌신한 사람입니다. 한국교회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이때에 정작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를 이어갈 탁월한 지도자들을 세워나가는 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세가 여호수아를, 사무엘이 다윗을, 엘리야가 엘리사를,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바울이 디모데를 양육하여 다음 세대를 준비시킨 것처럼 가까이에 있는 성장하는 후배들을 멘티로 세우고 음으로 양으로 사랑하고 도와주어서 제대로 된 하나님의 일꾼이 되도록 도와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도움을 받는 멘티가 멘토를 찾아가야 하기도 하지만 도움을 주는 멘토가 멘티를 발굴하여 적극적으로 세우는 것이 절실하고 더 성경적입니다. 담임목사라면 대상을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부교역자를 뽑을 때 신중하고, 또한 세워진 부교역자를 사랑하고 사역을 잘 전수하면 됩니다. 주일학교 교사라면 학생 중 하나 둘을 선택하여 지속적으로 관계를 형성하면서 도움을 주면 됩니다. 내가 어떤 자리에 있어도 멘티는 만들 수 있습니다. 나와 연결된 멘티를 신실하게 섬기는 것이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비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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