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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리가 다시 찾아야 할 것

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며칠 전 오후 시간에 손님을 만날 일이 있어서 어떤 사무실을 찾아갔는데 그 방은 임대해서 쓰고 있는 교회당을 지나가야만 했다. 어두컴컴한 교회당을 지나치다가 문득 누군가 그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사무실에 들어서서는 예배실에 있는 이가 누군가를 물었더니 그 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그는 하루의 대부분을 저렇게 기도하는데 쓰고 있다고 하였다. 그때 내 마음 속에는 먹먹한 감동과 자책감이 밀려왔다. 나는 언제 저렇게 기도하느라고 하루를 보내었던가.

교회사역이 점차 많아지면서, 때로는 교회 밖의 일들에도 쫓아다니는 일이 더 바빠지고 있는 현실을 맞닥뜨리고 사는 나로서는 새벽기도회에 나가서 한 시간을 기도한다고 앉아 있는 것도 때로 피곤하게 여기는 입장이어서 하루를, 그것도 수많은 날들을 그렇게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다른 목회자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넘어서서 부끄러움과 함께 나 자신이 바쁘게 돌아다니며 행하는 사역의 정당성을 잃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가만히 돌아보니 내가 하나님과의 동행을 가벼이 여긴 증상은 그뿐이 아니었다. 요즘 들어 성경을 더욱 실감나게 읽으며 감동하고 은혜를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 더 깊이 있는 연구에 헌신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아 마땅하다. 뿐만 아니다. 교회당에 들어설 때마다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어서 기도하곤 하지만 형식적일 때가 많을뿐더러 앉자마자 요식적인 기도를 드리고는 벌떡 일어서서 사무실로 향하며 어느 순간엔가 전화통을 붙잡거나 잡일에 몰두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페이스북, 카카오톡을 가까이 하면서부터는 마치 무슨 노이로제 환자처럼 소리만 들리면 전화기를 손에 들고 문자와 이메일을 확인하는 나 자신에 놀라기도 한다.

신앙생활의 본질이 하나님과의 동행이라면 신약의 성도는 넘치는 복을 누리는 자들이다.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언제나 긍휼하심을 얻기 위해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시대에는 그런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는 간헐적이었고 특정인에 한정되어 있었지 않은가. 그러나 구약시대나 지금이나 하나님과의 동행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님은 언제나 함께 하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놀랍게도 모세는 하나님과 마치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대면하였다(출33:11). 그는 ‘항상’ 장막(회막)을 백성들이 머무는 진 근처에 있게 하지 않고 멀리 떠나 있게 했다. 회막(會幕)은 Meeting Tent이다. 회막의 일차적인 의미는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이다. 오늘날 교회(敎會) 역시 사람들과의 만남의 자리이기보다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인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이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그 자리는 교회일 수 없는 것이다.

모세의 수종자 여호수아는 모세의 곁에서 이렇게 하나님과 교제하는 그의 지도자를 지켜보면서 하나님을 앙모하였다(출33:7).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동행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가졌었는지를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그는 모세를 보면서 자신도 하나님을 그렇게 만나는 자가 되기를 사모하였고, 그래서 모세가 회막을 떠난 뒤에도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은혜를 갈구하였던 것이다. 결국 여호수아가 모세가 죽은 뒤에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모세에게 임했던 영감이 여호수아에게도 임했기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오늘날의 목회자와 교회는 은과 금을 갖춘 교회다. 굳이 대형교회가 아니더라도 작은 교회들을 빼놓고는 대개 부요하다. 부족한 것이 없다. 그러나 교회가 교회가 아니고 예배가 예배가 아니어서 곤고하고 가련한 이유가 무엇인가. 주님이 문밖에 계시기 때문이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회와 이민교회들이 다시 가난하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 이름의 권능을 회복하고 싶다. 화려한 프로그램과 시스템은 부족하더라도 주님과 날마다 먹고 마심이 풍성해지기를 소원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금 주님과의 만남의 자리로 들어가야 한다. 그 자리를 집요하게 떠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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