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8일은 부활주일이다. 우리가 부활주일을 지키는 데는 세 가지의 뜻이 있다. 과거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미래적으로는 장차 임할 우리의 부활과 영생을 확신하는 날이다. 현재적으로는 부활정신으로 날마다 살기를 다짐하는 날이 부활주일의 기본적인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부활사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당연히 부활이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인도의 성자로 불리우는 썬다싱이 영국 국회에서 연설할 때 많은 청중들이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어떤 사람이 그가 힌두교의 유명한 학자이고 철저한 힌두교인이었는데 어떻게 기독교로 개종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그 때 썬다싱은 웃음 가득한 얼굴로 기쁘게, 그리고 간단하게 대답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때문이라고.
기독교의 신앙은 다른 모든 종교와 달리 무조건 믿는 맹신도 아니고, 미혹되어서 거짓된 대상을 믿는 미신도 아니며, 균형을 잃어버리고 믿는 광신도 아니다. 올바른 신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 바른 신앙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사실로써 믿는가 라는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2천년 동안의 기독교의 싸움은 부활을 믿는가라는 문제로 집약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면 그는 참된 신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활을 믿을 수 없다면 명목상 신자, 무늬만 신자인 것이다.
의심 많은 제자 도마가 결국 예수님의 부활을 믿은 것도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모두 부활의 증인들이 되어 순교의 제물까지 될 수 있었던 것도 부활의 사실성 때문이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이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끊임없이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사건이 성취된 것이며,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우리의 믿음도 헛되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되고 또한 거짓말쟁이가 된다고 하였으며, 부활의 역사성에 근거하여 더욱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주의 일에 항상 힘쓰는 자가 되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부활의 사실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부활의 증인들이 되어야 한다.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이들은 반드시 믿고 싶은데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믿기 싫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기 때문에 믿지 않는 이들이 더 많다. 그런 이들은 어떻게 부활을 확신할 수 있을까? 먼저는 진지하게 의심하고 사실이라면 믿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확인이 될 때까지는 믿지 못하겠다고 하는 어떤 면에서는 확신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은 결국 온전한 신앙의 빛 가운데로 나오게 된다.
기독교 변증가로 세계적으로 사역하는 국제대학생선교회의 조시 맥도웰(Josh McDowell)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가짜라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1959년 5월 방학을 맞이해서 유럽으로 건너가서 옥스퍼드와 캠브릿지 대학의 도서관을 비롯한 여타의 도서관을 뒤졌다. 먼저 회의론자들의 글을 읽으면서 그들이 왜 부활을 믿지 않는지를 알게 되었다. 다음으로는 회의론자였다가 기독교 신앙을 가진 자들의 글을 읽었다. Frank Morrison, C. S. Lewis, Lord Littleton, Gilbert West, 그리고 Thomas Arnold와 같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고 부인하려고 성경을 연구하다가 열렬한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된 자들의 글을 읽었다. 방학이 끝나가는 어느 날 런던 교외의 작은 도서관에 앉아서 자기도 모르게 도서관의 사서들이 놀라서 뒤를 돌아볼 정도로 큰 소리로 “이건 정말 진리야!”라고 외치고는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믿고 감정에 치우쳐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고 기독교를 배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활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활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역사성에 있다. 이런 부활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그리고 역사 속의 그 누구도 부활을 부인할 수 없기에 우리는 오늘도 충만한 부활정신으로 살 수 있다. 부활을 믿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으며 세상과 타협하며 적당히 살 수 없는 존재들이며 담대한 증인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