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훈 목사 (시카고 그레이스교회)
사람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고 산다. 이 과정에 말과 글 그리고 몸짓 등이 사용되는데, 우리는 이것들을 집합하여 넓은 의미로 ‘언어(言語)’라 부른다. 인간의 본질적 특징이 사고(思考)이며, 그것을 전달하는 수단이 언어라고 할 때, 전달매체로서의 언어의 기능은 매우 중요하다. 전달매체의 효능에 따라 의사전달이 활발하게 될 것이며, 효율적 소통이 공동선을 향한 힘찬 발걸음이 될 것이니 언어의 발전 또한 필수적인 것이다. 이에 따라 사회마다 관습적으로 쌓인 다른 언어 체계가 생겼고 그것이 오늘날의 다양한 문화로 발전하는 기반이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같은 언어 속에 같은 사상이 발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말’과 ‘글’을 생각해 볼 때, 전자는 끈 없는 구슬 더미와 같다. 누구나 나름대로의 말의 법과 길을 따른다지만 흩어져 있는 구슬을, 그것도 짧은 시간에 자기가 원하는 표현대로 묶어내기란 쉽지 않다. 물론 어떤 사람은 끈 없어도 구슬을 일렬로 정렬하듯 말을 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언변이라 하며 그를 설득력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대화의 시간이 길어지거나, 어떤 분야의 전문적인 대화일수록 끈으로 묶지 않은 구슬로 견디어내기란 쉽지 않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경험으로 이해력은 늘지만 정연한 논리보다 자의적인 고집만 늘어가며 의미 없는 반복이 잦고 뜻하지 않은 다른 방향으로 나가기 일쑤다. 그래서 정확하게 말하기 위해 사람들은 글을 선호한다. 흔히 말하는 ‘문서’가 대표적인 것이지만, 그 외에도 대다수의 글(문서)이 그렇다. 글은 비교적 정확하게 뜻을 나타낼 수 있다. 아무리 내용이 길고 많거나 전문적인 것이라 해도 마치 실로 구슬을 꿰어 놓듯 일렬로 정리할 수 있다. 또한 글로 남기면 불필요한 대화의 중복이나 전하려는 뜻에 대한 불필요한 감정을 피할 수 있고 글을 남긴 자의 책임이 있으니 절제된 표현들이 사용될 것이다. 보관이 가능하니 언제고 되돌아 볼 수도 있는 것도 장기적인 대화에 필수적인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는 글보다 말이 앞선다.’ 누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해도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생각 없이 말한다’는 지적은 정돈되지 않은 말로 인한 정신적, 관계적, 사회적 폐해에 대한 고마운 충고가 아닐 수 없다. 혹 말이 앞서기 때문에 자주 후회한다면 해야 할 말을 미리 ‘글’로 적어보는 훈련을 강력하게 권한다. 긴 문장으로 적어 볼 염두가 나지 않으면 메모라도 해야 한다. 물론 일상의 그 많은 말들을 그 때마다 어떻게 미리 글로 적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최소한 중요한 모임이나 만남, 공적인 자리, 주장을 해야 할 경우 등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적어보기를 바란다. 먼저 (1)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마디 제목으로 만들어 보라. 내가 말하려는 요점이 무엇인지 잊지 않아야 곁길로 빠지지 않는다. (2)그것을 설명한다면 어떻게 풀어 놓을 것인지 몇 가지로 정리해보라. 효과적인 설명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 (3)내가 하는 이야기가 맞다는 뒷받침이 무엇인지 정리해보라. 주장에는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증거, 증명, 사례들이 필요하다. (4)필요한 경우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진단은 있는데 대안이 없으면 자칫 비판으로 그칠 수 있다. (5)이 일에 내 자신,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자칫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잔뜩 주는 성향만 가중될 수 있다.
연말이 되었다. 지금부터 2-3개월 동안은 교회나 기관 단체마다 회의와 모임이 많다. 자칫하면 말의 난무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만 쌓일 수 있는 계절이기도 한다. 좋은 시절에 결실 있는 모임을 만들기 위해서 글로 말하는 훈련하기를 권한다. 말은 단번에 나가고 한 번 나가면 다시 잡을 수 없으나 글은 여러 차례 살펴보고 나가기 전에 고칠 수 있다. 그래서 글을 통해 말하면 설득하는 힘이 늘어나고 자신의 신뢰도 높아질 것이며 공동체는 성숙하게 될 것이다. 글로 말하는 훈련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