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훈 목사 (시카고 그레이스교회)
2011년 10월 5일,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한 장의 사진을 남긴 채 56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인터넷을 도배한 흑백사진 속의 그는 오랜 세월 트레이드마크가 된 검정 터틀넥 셔츠를 입었고 가볍게 주먹을 쥔 채로 턱에 닿은 엄지손가락은 솟아오르는 아이디어의 싹 같이 보이며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그의 표정과 안경 너머로 무엇인가 직시하는 그의 눈빛은 계속해서 세상을 혁신하란 명처럼 느껴진다. 이미 비밀 장례식과 추모식이 거행되었지만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추모의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데 아이폰 4S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유작처럼 생각되어 매장마다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이 한 증거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았지만 스티브 잡스만큼 짧은 시간에 인간의 삶을 바꾸어 놓은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흔히 말하는 ‘IT세상’은 그의 작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플(Apple), 아이(I), 맥(Mac)이란 접두어를 달고 나온 각종 기기들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앗아갔다. 마음뿐이 아니다. 1977년 AppleII를 세상에 내 놓으면서 개인용 컴퓨터 시대를 열었고, 그 후 Apple이라는 고유의 이름과 한 입 베어 먹은 은색 사과의 로고 아래, 인종과 언어, 그리고 지역을 초월한 새로운 Apple문화를 만들어 냈으며, 지금도 애플은 역사의 한 장으로서의 문화를 바꾸어가는 중이다. 그에게 따라다니는 수사들, IT천재, 미국 IT산업의 상징,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 그리고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호칭들이 새삼스럽지 않은 것도 다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의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 같다. 태어나서 입양되는 과정도 그렇거니와 자기가 만든 회사에서 쫓겨나고, 수년 뒤에 다시 들어간 것, 15년 동안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으며, 7년여에 거친 투병생활을 했던 것 등이 그렇다. 사람들은 그래서 더욱 감동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나치지 않아야 할 사실들이 있다. 그에게는 기기를 만드는 창조적 기술 이전에, 인생에 대한 신앙적 수준의 철학이 있었다는 점이다. 오레곤(Oregon) 주의 리드대학(Reed College)에서 한 학기를 공부하고 중퇴한 뒤, 그는 선불교에 가까이 간다. 일본인 승려를 통해 선불교에 입문하였고, 이어 인도 히말라야 여행을 통해 불교에 깊이 몰입한다. 그가 여행에서 돌아올 때 머리를 짧게 깎았으며, 한 때 승려가 될 생각을 하기도 했다니 그에 대한 선불교의 영향력이 작지 않은 셈이다. 그의 창조적이며 혁신적인 기술을 담아내는 그릇은 언제나 ‘집중’과 ‘단순’이라는 것이었는데, 이 역시 잡스의 선불교 영향에서 비롯되었으며, 명연설로 평가 받는 스탠포드대학교의 졸업연설문 중, 죽음에 관한 내용도 그렇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무언가 잃을게 있다는 생각의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당신은 잃을게 없으니 가슴이 시키는 대로 따르지 않을 이유도 없다.’ 편치 않은 성장 배경과 미국식 자유적 사고에 바탕을 둔 그에게 동양의 선불교가 가져다 준 자유는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가슴을 따르게 했다. 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뒤 한국 조계종에서는 ‘선불교의 정신으로 IT산업의 미래를 선도했다’며 깊이 애도했다니, 그가 인생과 사업에 있어서 공식적으로 품고 있던 철학종교는 선불교 정신이었던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큰 존경과 넘치는 사랑을 받을 만하다. 많은 사람이 그에게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좋아하던 그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정신, 인간사회에 활력을 넣어 준 혁신 의지, 긴 투병 중에서도 지속된 세상 변화 의지, 그리고 죽음에 대한 그 당당함의 뿌리가 알게 모르게 선불교의 정신에 있다는 것이다.
종교나 신앙의 이름으로 그의 소중한 업적이나 숭고한 의지를 폄하하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여전히 그를 향한 깊은 존경과 감사, 그리고 애도하는 마음이 있다. 다만 우리에게 남긴 업적과 그의 정신은 냉철하게 가려서 보아야 한다는 것과 짧게는 7년의 투병, 15년의 애플 생활, 더 길게는 대학중퇴 이후에 그 옆에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없었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정말 그 옆에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없었을까? 지나간 일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불쌍한 영웅’이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무거워서 그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