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 목사 (장위제일교회)
한국 기독교 인구가 약 1천만 명 정도인 것으로 압니다. 그중에 장로의 수도 적어도 십만 명 정도는 되지 않겠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정확한 숫자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우리교단(예장합동)만 하더라도 2만7천 명 정도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년에 한 번씩 모이는 장로회수련회는 최근에 우리교단만 4천 명을 육박합니다. 신문광고에 보면 대형교회는 장로임직을 한꺼번에 수십 명씩 하는 것을 봅니다. 이렇게 장로가 많은데 장로가 적고, 장로가 귀하다고 보는 견해는 무엇인가? 의문이 생길 것입니다.
사실 장로는 교회의 직분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성경에는 행 11:30/14:23/15:2,4,22-23/16:4/20:17/21:7/21:18, 약 5:14, 벧전 5:1/5:5, 요이1, 요삼1에 나오며 딤전 5:17-19에는 잘 다스리는 장로를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할 것이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장로에 대하여 구약에서 약 100회 신약에서 60회 정도 나타나는데 신구약 전체에서 나타나는 두 용어를 종합해 볼 때 학식이 많고 풍부한 경험을 가진 연로하고 품위 있고 덕망을 겸한 자로서 가정에서나 공동사회에서 존경받는 지도자를 장로로 택하여 세웠던 것입니다.
특히 구약시대 장로는 제사장을 도와 이스라엘 회중의 속죄에 참여했으며 재판권의 직무를 수행했고, 왕을 세우는 일에도 함께 했으며, 율법과 교훈과 유전을 세웠습니다. 신약에서는 장로의 자격에 대해 다양한 내용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딤전 3:1-7/딛 1:5-9/벧전 5:1-4).
사도시대에는 두 부류의 장로가 있었는데 치리장로와 말씀강론장로가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유대인 사회에 회당장로와 성읍의 장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장로는 교회의 앞장 선 일군으로서 말이나 행실, 도덕적 인격이나 신앙의 수준이 높은 경지에 있어야 하며 모든 면에 본이 되어야 함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인정하는 직인 것입니다.
그런데 물론 이 세상에는 완전한 사람도, 완전한 지도자나 스승도 없지만 그러나 교회에서 감독하고 치리하는 일군으로서 그리고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괄하고 도리 오해나 도덕적 부패 방지하는 자요, 말씀으로 부탁하고 권면하는 일과 성례를 시행하는 자로서 모든 면에 본이 되고 앞서가는 자이어야 함은 더 이상 논할 여지가 없는 줄 압니다.
그런데 직이 무겁고 큰 만큼 책임도 따른다는 차원에서 볼 때 정말 모범적이고 인격적이고 신앙적인 면에 본이 되는 장로가 전체의 수에 비해 적고 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시각인지 모르겠으나 일찍이 장로의 직을 받아 봉사한 경험자로서 자책도 해보고 냉철하게 생각도 해보는 것입니다. 더더구나 과거의 장로의 수가 아주 적을 때 장로의 신앙과 인격을 보고 느낀 경험과 지금에 와서 볼 때 시대의 변화의 영향인지 아니면 보는 자가 과거보다 순수성을 잃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본이 되고 존경하고 싶은 자의 수가 전체 수의 증가에 비해 너무나 적고 귀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장로가 많다고 나쁘고, 적다고 귀하다는 논리가 아니라 다시 반복하지만 교회의 신령적 관계를 총괄할 수 있는 능력이 즉 영적 지도자로서의 리더십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교단 목사기 1만5천7백51명인데 “목사를 찾고 있는 시대가 되었다”는 답답한 가슴과 “장로가 적고 귀하다”는 생각과 맥을 같이 하는 오늘의 시대적 감각이라는 고백을 하면서 저의 부정적이고, 잘못된 시각의 논리가 되었으면 즉 잘못된 비판적 논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도 해 보는 것입니다.
장로가 많아지기를 기도합니다. 정말 직분다운 직분자로서의 장로가 많기를 기도합니다. 그 이유는 장로교의 앞날에 장로 된 지도자들의 수준과 비례해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