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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웨이트리스(waitress)의 교훈

원종훈 목사 (시카고 그레이스교회)

오고 가는 선교사님이나 손님들 접대, 혹은 모임 때문에 가끔 들리는 곳이 있습니다. 전에 비해 맛이 좋아졌다지만 그것보다는 외국에서 온 동포가 일하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있어 가는 곳입니다. 언젠가 자기 나라로 돌아갈 그 사람 눈에 자기 나라에 선교 오는 사람들에 대한 호감을 조금이나마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이들을 뒤에 두고 돈 벌러 온 어머니이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곳을 가기가 다소 불편했습니다. 맛이 떨어진 것도 아니고, 주차장이 부족해 고통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날로 번창하는지라 전에 보지 못하던 아줌마 종업원들이 늘어났습니다. 예쁜 유니폼을 입고 일하시는 모습들이 보기에 참 좋았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자주 우리들을 담당하는 분이 생겼습니다. 손님을 배정하는 식당 내부의 원칙은 잘 모르겠지만 이곳에 앉아도 그 분이 오고, 저 쪽에 앉아도 그 분이 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상냥하게 대접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 보여 좋았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단순히 그날 나의 몸 기운이 안 좋아서 그런 줄로만 알았습니다. 더욱 건강을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중 다시 들릴 일이 있었던 며칠 전에야 그 답을 알아냈습니다. 그 날 그 분에게서는 ‘섬김’을 받는다는 생각보다는 ‘가르침’이나 ‘취급’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웨이터(waiter) 혹은 웨이트리스(waitress)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분들이 손님을 섬기기 위해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손님들은 자리에 앉지만 일하시는 분들은 자리에 앉는 법이 없습니다. 만일 이곳에서는 웨이트리스로 일하지만 다른 곳에 손님으로 가면 그 분들 역시 서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앉아서 그 식당의 종업원들에게 섬김을 받으면 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장소, 자리, 위치에 따라 섬김을 주고받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섬김의 자리에서는 분명 섬겨야 합니다. 그 분은 ‘말’로 손님을 다루려는 인상이 있었으며, 손님보다 위에 있는 자세였습니다. 다른 분들과 달리... 개인을 흉보거나 어떤 식당을 망하게 하려는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어느 식당이지?’ ‘누구지?’ 이런 생각은 아예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다만 마땅히 섬겨야 할 사람들이 섬기지 않는 곳에서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치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나 다 마찬가지입니다. 섬김은 사람을 편하게 만듭니다. 섬김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나 누구나 섬기기보다는 섬김 받기를 좋아합니다. 섬기는 자세는 낮아져야 하고, 희생이 따르고, 때로는 멸시나 조롱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 어려움 때문에 쉬운 쪽을 택하려고 하는 것이며, 또한 섬김이 중요한 줄은 알지만, ‘누가 누구를 섬겨야 하는가?’에는 생각이 달라지게 됩니다. ‘돈’만 해도 그렇습니다. 폭 넓게 섬기기 위해서 버는 사람보다는 더 섬김 받기 위해 버는 의식이 지배적입니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든지 섬김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나에게 찾아오는 섬김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할 뿐입니다.

식당에서 나오는데, 때 아닌 찬바람이 몸 속 깊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웨이터로 오심과 섬김을 받는 자보다 섬기는 자가 더 복되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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