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호 목사 (브라질 새소망교회)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온유한 자가 땅을 소유하게 된다고 하였다(마5:5). 온유한 자란 “부드러운 태도에서 살며 모해에 쉽사리 노하지 않으며 보복코자 하지 않으며 자기에 대한 악의에 길이 참는 것”이라고 했다(칼빈). 온유(溫柔)란 외모적인 것보다 마음의 자세를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절대 순종과 사람에 대한 선의(vincent)를 뜻한다. 온유는 바로 예수님의 마음이다(마11:29).
중국의 유명한 노자는 상창이라는 스승에게서 도를 배웠다. 상창이 세상을 떠날 때쯤 노자는 스승을 찾아가 마지막 가르침을 부탁했다. 스승은 제자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어 보이고는 “내 이(치아)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니 다시 스승은 “내 혀가 있느냐?”라고 물었다. 노자는 “예,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스승은 이것이 가르침이라고 하였고, 제자는 큰 절을 하고 물러나왔다. 스승의 가르침은 부드럽고 온유한 것이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이(치아)는 단단하고 강하며 딱딱한 것을 부수기도 하지만 결국 부러지고 깨어지고 빠져나가서 없어지고 만다. 권력, 무력, 폭력은 강한 것 같지만 금방 무너지고 부러지고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혀처럼 부드러운 것은 오래 남는다. 노자는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이 진정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유의 참된 의미는 부드럽고 따뜻하고 유순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현대인들을 보면 부드럽지 않고 강퍅하고 냉정하고 몰인정한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강하고 냉정하고 사나운 성품을 가진 사람이 아닌 부드럽고 따뜻하고 온유하고 유순한 성품을 가진 사람, 하나님께 순종하고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 선배에게 겸손하고 존경하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는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은 겸손히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 남을 친절히 섬길 줄 아는 사람, 억울하게 욕을 먹거나 매를 맞고도 잘 참고 견디며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돌보아 주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온유한 사람은 결국 많은 땅을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시편 37편 11절에 보면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라고 하였다. 우리 모두 온유한 자가 되어 땅을 기업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겠다. 땅을 많이 차지하는 사람은 왕이 된다. 온유한 사람이 지도자가 될 수 있다. 온유한 사람이 결국 많은 사람들을 지도하며 한 단체나 기관을 맡아서 이끌어 갈 수 있는 참된 지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온유함은 겸손의 선물이며 교만은 불순종과 죄의 자식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언제나 온유한 자의 편이 되어 주신다.
제2차 세계대전의 중심인물인 히틀러, 무솔리니, 처칠을 풍자한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이들은 잘 가꾸어진 정원의 연못에 있는 물고기 잡이에 내기를 걸었다. 제일 먼저 히틀러가 권총을 뽑아 발사했다. 제일 손쉽고 강한 방법처럼 보였지만 탄환은 물고기를 맞추지 못했다. 히틀러의 실패를 본 무솔리니는 연못에 직접 들어가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물속에서는 물고기의 동작이 사람보다 민첩하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처칠의 차례가 왔다. 처칠은 연못의 물을 모두 퍼냈다. 물고기는 당연히 가장 부드러운 방법을 사용한 처칠에게 잡혔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결과는 어떤가? 강자였던 히틀러, 무솔리니에 대해선 사후에도 단죄의 소리가 높았지만 처칠은 국가유공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그 이름이 새겨져 있고 런던 피커딜리 공원에 동상이 세워졌다.
부드러운 가죽과 예리한 면도칼 어떤 것이 강할까? 면도칼이 강한 것 같지만 면도날을 세우려면 보들보들한 가죽에 문질러야 한다. 부드러운 가죽이 강한 면도날을 마모시키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땅을 정복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강한 자가 아니라 온유한 사람이다. 온유한 목사, 온유한 장로, 온유한 권사, 온유한 집사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큰 성공, 큰 축복을 차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