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훈 목사 (시카고 그레이스교회)
많은 미국인들이 일년 열심히 일하고 며칠 기분좋게 보낸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심지어 며칠간의 여름휴가 때문에 일년을 산다는 사람도 있다. 매스컴에 등장하는 여름철 이동인구나 경제활동규모는 이를 더욱 실감나게 한다. 그만큼 여름휴가가 현대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말일 것이다. 아닌게아니라 농경사회와 달리 지금은 여름휴가가 생활화되어 있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이마저 그림의 떡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부지런한 우리 한인들에게 휴가는 몇 년에 한 번 있는 가족 행사의 부록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그러다보니 휴가에 대한 이해 역시 왜곡되기 쉬우며 그 시각으로 자타의 휴가를 보는 것 같아 조심스러울 때가 있다.
방학, 휴가를 뜻하는 Vacation 단어는 ‘비우다’ 혹은 ‘떠나다’를 의미한다. 빈방 있다고 알리는 시골 모텔의 네온사인 Vacancy나 가정에서 사용하는 진공청소기 Vacuum도 같은 어원에서 비롯되었다. 어원적인 의미로 볼 때 휴가는 ‘자기를 비우는 시간’이다. 바쁘게 살아가느라 자기도 모르게 자기 안에 생긴 것들을 비우는 것이다. 그것이 삶과 일에서 생긴 스트레스 같은 부담감일 수 있고 일상의 대인관계에서 생긴 많은 생채기일 수 있으며 지나치게 빠른 세상에 적응하고자 숨가쁘게 달려온 기형의 정서일 수 있다. 혹은 남모르는 가장이나 리더의 외로움일 수 있고 막연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일 수 있으며 신체 한 부분에서 느껴지는 고독한 통증일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비워야하고 떠나야 한다. 아니, 비우기 위해 떠나야 한다. 늘 있는 자리에서는 일상적 삶의 회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그 회전속도로는 자기 안에 있는 것들을 비울 수 없으니 일상의 다른 속도를 만들어내는 시공간을 찾아 잠시 떠나는 것이다.
휴가는 또한 ‘채우기 위해 비우는 시간’이다. 지난 일을 잊어버리려고 비우는 것이 아니고 앞날을 다시 걷기위해 지난날을 비우는 것이다. 비우지 않으면 채울 수 없으니 결국 휴가는 나를 채우기 위해 나를 비우는 것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까지 차오르는 인생에 대한 벅찬 감격, 지금까지와 다르게 살 수 있다는 앞날에 대한 소망 하나하나 짚어가며 세워보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계획들이 그것이며, 또한 하나님과 이웃을 목숨보다 귀하게 다시 사랑할 수 있으며 늘 해오던 일이라도 새롭게 일할 수 있는 자세들로 채우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것을 찾아 먼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다닌다. 하지만 비우지 않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만 하면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잿빛 혼돈만 있을 뿐이다. 혹은 계속 비우기만 할 뿐 채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는 이전보다 훨씬 더 비워야 할 것들로만 가득 차게 되거나 빈 공허함으로 방황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는 새로운 전진이란 찾아보기 어려우며 명분 있는 안주가 최선이다.
잘 놀기 위해 떠나든 잘 쉬기 위해 가든 휴가는 비우고 채워야 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방법으로 비우고 채울 수 있으니 다른 사람의 휴가를 함부로 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휴가는 이외에 좀 더 다른 측면이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안식의 훈련’이라는 점이다. 인생과 사역의 ‘자기 주권을 내려놓는 훈련’이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재확인하고 심령의 부흥(re-vival)과 사명의 갱신(re-newal)이 있어야 하며, 이것이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교회에 주는 유익으로 나타나야 한다. 간혹 휴가 가는 사람은 죄인이고 휴가가지 않고 일하는 사람은 의인이라는 이원론적인 그릇된 시각이 있는 것 같다. 목회자 사이에서도 그런 판단이 있는 것 같다.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이다. 휴가 가는 것이 잘못이 아니라 휴가를 바르게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 잘못이다. 적극적으로 유익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어찌 일년에 한 번 가는 휴가뿐이겠는가? 필요하다면 주기적이고 정기적으로 이런 의미의 시간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고 자기를 살피며 가족애를 새롭게 하고 삶과 일에 대한 새로운 의욕과 자세를 가다듬으며, 그래서 교회에 크게 유익한 시간이 된다면 그렇다면 그 휴가/쉼/놈/이 된 것이다. 7월이 다 가는 때, 그것도 경제적으로 가장 어렵다는 이 때 휴가에 대하여 한번 짚고 넘어가는 것은 휴가가 어느 의미에서 사람이 사람답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 다울 수 있는 가장 겸손한 시간 중의 하나라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