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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재난 때마다 불편했던 마음

원종훈 목사 (시카고 그레이스교회)

지난 3월 11일, 일본 땅에 대지진과 쓰나미가 밀어닥쳤다. 처음에는 규모가 조금 더 큰 흔한 지진인 줄 알았는데, 피해정도가 전해질 때마다 일본인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 모두 경악하고 있다. 현재까지 실종, 사상자가 3만명에 이르렀고, 향후 잠정추산 5만명을 웃돌 것이라고 한다. 그뿐 아니다.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가 상상을 초월할지 모른다. 이미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선이 평상 정상수치의 천배나 넘는 곳도 있다하며, 각 나라는 자국민 보호차원에서 서둘러 일본을 떠나도록 조치한 상태이다. 아마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가 수년에 걸쳐 두고두고 나타날 것 같다. 경제적 피해와 심리적 공항상태가 수년간 지속될 전망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전에도 그랬거니와 큰 재난이 생길 때마다 마음불편한 일이 눈에 띄곤 했었는데 이번에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벌써 그 징조들이 보이고 있다.

우선 지나치게 경쟁적인 모금활동이 그렇다. 세계적인 사건이 터질 때마다 앞다투어 기관 단체와 언론매체, 혹은 교단이 손을 잡고 모금한다는 공문과 광고가 쏟아진다. 급한 일 당한 이웃을 도와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또한 각 기관단체가 자기들에게 성금을 보내달라는 것도 주관자가 분명한 것이니, 이것 자체가 부정적인 현상은 아니다. 그런데 간혹 이면에 있는 생각들을 엿볼 때마다 마음 불편해지는 것이 있다. 마치 어려운 이웃돕기가 아니라 기금 끌어 모으기 파워나 인맥경쟁이라도 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그 노력이 처절하기까지 하다. 모아진 액수가 많을수록 그 기관의 공신력이나 우수성, 혹은 정통성이 나타나는 것은 아닌데, 마치 그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시민들도 그렇다. 성금액수의 비교를 통해 기관 단체 등의 비교를 부추겨서는 안 된다.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고 나선 기관단체의 고결한 뜻을 호도해서도 안된다. 성금을 내는 사람이나 받는 기관이나 어려운 사람 돕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어차피 어느 기관단체를 통하든 그 돈은 한 푼도 빠짐없이 다 현지로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성금을 내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러니 누구를 통해서 돕는가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치 않는 문제로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 한다는 기본 마음마저 흔들리지 않아야 할 것이다.

마음 흔들리며 마음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이뿐 아니다. 재난을 당하면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 공산 광산품이 장기간 공급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이번 일본에서는 방사능 피해 때문에 생각보다 더 오래갈 것 같다는 전망이다. 가장 민감한 것은 역시 먹거리인 수산물이다. 일본근해 뿐 아니라 인접국가의 해안 그리고 태평양 일부까지 방사능 피해가 미칠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벌써 멸치를 비롯한 특정 수산가공품들을 사두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느 국가에서든지 뜻하지 않은 재난을 대비하여 비상식량을 준비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니 먹거리를 미리 준비한다는데 이를 잘못이라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 하는 대로 똑같이 하면서 우리가 당신과 다르다는 말을 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사랑이 이 세상 어느 사랑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려면 그 뒤를 따르는 우리 모습이 어떤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나비효과처럼 한 사람의 행동이 어떤 효과를 미칠지 생각해보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어려울수록 정신차려야 한다. 어려울수록 깨어있으라 말씀하신 의도를 생각해야 한다. 어두울수록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빛나야 한다. 개인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우리의 우월한 삶의 양식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도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 통 크고 폭 넓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르치고 보여주어야 한다. 믿지 않던 영혼들이 어려울 때에 교회로 돌아왔던 지난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교회가 앞장서서 도와주고 나누어주며 그들의 아픈 사정을 품었기 때문이다. 어려울 때 사랑의 빛을 발하지 못하면 편안함 속에 묻힌 현대인의 영혼을 끄집어내기는 어렵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일본을 돕자는 목소리가 크다. 이럴 때 일수록 무엇을 어떻게 도와야하는지 주님의 눈과 마음으로 보아야하겠기에 재난을 당할 때 느꼈던 마음 불편한 일을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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