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종훈 목사 (시카고 그레이스교회)
지구촌 한 구석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올림픽 같은 유쾌한 열기라면 좋겠는데 그렇지 않으니 온통 불안과 긴장감이 맴돌고 있다. 튀니지, 이집트를 거쳐 리비아, 예멘, 모로코, 요르단, 이란, 이라크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진행되는 일련의 일들 때문이다. 반정부 운동, 민주화 운동, 시민혁명, 시위, 혹은 사태 등 각 국가와 시각의 차이 및 훗날 역사의 평가에 따라 다르게 불리겠지만 이 지역에서 일어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벌써 수개월 계속되면서 그 파괴력을 더해가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제2의 자스민 운동을 겁내는 중국이나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가의 북쪽을 비롯한 공산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더욱 더 국민의식을 단속하고 있고, 지도력이 약한 민주국가들에서도 행여 그 불똥이 자국에 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경제적으로는 하루가 다른 상승유가는 실생활에 그대로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고 요동치는 주식시장은 금융 및 부동산 위기를 겨우 벗어나고 있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던 서민경제에 찬물을 끼얹으며 다시 세계를 흔들고 있다.
그 중 리비아는 가장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나라이다. 42년간 가다피의 철권통치를 받아오던 국민들은 이왕 일어난 김에 끝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더구나 가다피 측근들의 시위 가담으로 인하여 천군만마의 힘을 얻은 시민군의 지속적인 승리에 대하여 트리폴리 방어를 자기자신과 일가족, 나아가 자신이 쓴 역사를 방어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가다피와의 일전태세는 리비아 뿐 아니라 서로 연결되어 있는 온 지구마을의 앞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 그러기에 유엔과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경제제재와 군사적 조치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으니 대규모의 유혈사태를 막을 뿐 아니라 빠르게 세계적 안정의 길을 되찾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역시 지도자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힘이 있어서 지도자가 되었든 생각지 않은 기회가 주어져 지도자가 되었든 아니면 타의에 밀려 지도자가 되었든 지도자는 지도자다워야 한다. 국민이 자신의 주권을 잠시 위임한 지도자들이 국가가 자기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착각한다면 그 나라는 불행할 수밖에 없다. 흥미롭게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난 나라들을 보면 유사한 점들이 있다. 지도자가 되는 과정에 국민적 함의 및 정통성이 결여되어 있거나 지도자에게 신적권력이 필요 이상으로 집중되어 있었고 그 주변에는 가족중심의 친위대가 철옹성처럼 둘러쌓았으며, 이 모든 것이 천문학적인 비밀재산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은 국민과 국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과 자신의 권세를 보존하기 위한 것이었으니 당연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자기정체성을 잃은 국가지도자는 결국 국가정체성까지 잃게 만든다. 자국방어를 위해 개발된 항공기와 미사일, 그리고 대량살상용 생화학무기를 자국민을 향해 사용하려는 지도자는 이미 지도자가 아니다. 지도능력을 논하기 전에 지도자의 자아정체성이 분명해야 한다. 그러면 혹 능력부족으로 실정은 할지언정 국민의 존재자체를 부인하는 폭정은 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지도능력도 무시할 수는 없다. 개인의 실수가 수천만 수억의 생명들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준다면, 그리고 이런 실수가 해를 거듭해가며 반복된다면 이것은 자신을 깊이 돌아볼 일이다. 지도력 향상을 위하여 겸비하게 노력하든지 능력있는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지도체제를 바꾸든지 어떻게 해서라도 실수를 줄여볼 일이다. 수많은 백성들을 인도할 책임 있는 사람들이 실수였다고 계속 말하기에는 너무나 그 자리가 중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지도자가 중요한 것이 어디 국가뿐이겠는가? 사회의 모든 기관단체들도 마찬가지이며 더구나 영적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교회 내의 각종 지도자들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지금이야말로 교회를 위해 지도자가 있는 것이지 지도자를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서부터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나아가 성숙한 영적지도력 향상을 위해 스스로 채찍을 가해야 할 때이다. 그래야 하나님 교회의 영광스러운 빛을 혼탁한 세상에 힘 있게 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