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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슬람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하여

원종훈 목사 (시카고 그레이스교회)

테리 존스(Terry Jones) 목사가 이슬람 경전 꾸란(Koran)을 태우는 날로 삼은 9월 11일이 지난 지 한 달이 되었다. 자신이 시무하는 교회 앞에 세워둔 홍보벽면의 빨강색 글씨( International Burn A Koran Day 9/11/2010 6pm-9pm)를 사람들은 아직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일명 그라운드 제로 옆에 건축하겠다는 모스크를 두고 찬반논쟁이 가열되는 중에 일어났던 일인지라 존스 목사는 초미의 관심이 되었었다.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진화하려고 애썼던 탓인지 그는 실행 이틀 전에 이슬람 센터 부지 이전소식을 전하며 계획을 취소하였다. 하지만, 꾸란 태우는 것이 과연 예수 가르침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방법인지는 여전히 의문스럽다.

불교권이나 힌두교권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권 역시 우리가 사랑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선교지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2001년 9월 11일 이후 이슬람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사뭇 달라졌다. 서두에 언급한 사건도 달라진 시각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시각변화가 선교에 영향을 미칠 득실이 무엇인지 정확히 계산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슬람을 테러집단과 동등시 하는 것은 선교나 세계평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북한사람의 얼굴은 전부 빨강색이며 그 중 몇은 머리에 뿔까지 난 줄 알았던 어린 시절을 지내고보니, 사람이나 사실에 대하여 바른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선교에 있어서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사랑하는 길이며 복음을 나눠 주는 첩경일 것이다.

이슬람을 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교회들이 이슬람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선교전문가도 아니고 이슬람학 학자는 더더욱 아닌 사람 입장에서 이런 말하기가 어렵다. 이슬람을 기독교, 불교와 함께 세계 3대 종교의 하나로 구분한다는 것과 무함마드가 창시자이며 그들의 회당을 모스크라 불리우는 것,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을 무슬림이라 부른다는 정도 외에 아는 게 없고 그저 신문지상에서 다루는 이슬람에 대한 정보 정도 밖에 갖추지 못한 사람 입장에서 이슬람선교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바른 이해가 더욱 절실한 것이다. 세상이 빠르게 달라지고 있어서도 그렇다. 지난 30년 만에 영국 무슬림이 두 배나 늘어났다. 기독교 다음으로 큰 규모이며 600개 정도의 모스크와 60개 정도의 이슬람학교가 있다 한다. 이러다가 영국이 이슬람 국가가 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된다. 영국만이 아니다. EU통합 이후 유럽은 이슬람의 빠른 인구유입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 역시 이슬람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에도 10여개가 넘는 모스크가 있다 하니 이태원 모스크 한 곳을 바라보며 신기해하던 일이 옛 일이 되었다. 어느 통계에는 전 세계 인구 중 22% 는 무슬림이며 33%가 기독교인이라 한다.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렇다고 이슬람을 공격대상의 적으로 보거나 테러리스트 집단으로만 생각한다면 이는 이슬람선교를 잘못 접근하는 것이다. 유화적인 자세로 한국 기독교권에 대한 역 선교를 꿈꾸고 있는 이때에, 잘못 접근하면 자칫 일이 크게 뒤틀릴 수 있다. 십자군 전쟁의 아픔이 엄연한 역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나간 역사를 다시 쓸 수는 없지만 되풀이 하지 않을 수는 있어야 한다.

지난 수년 동안 이슬람 선교하는 분들을 만났다. 그럴 때마다 깜짝 놀라는 것이 있었다. 각 선교단체마다 이론, 전략 및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같은 목적 하에 다른 전략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감안하고서도 그러했다. 이슬람의 역사나 교리 등에 관한 객관적 지식이나 정보가 다른 것은 아니었다. 사람, 즉 무슬림에 대한 이해가 달랐다. 그들을 공격적인 선교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우와 그들을 우리와 같은 희로애락을 느끼는 인간으로 여기는 경우였다. 무슬림을 제대로 사랑하기 위해서, 그들에 대한 바른 정보와 지식이 필요하다. 이슬람을 바르게 이해하며 무슬림을 바르게 사랑하도록 돕는 접근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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