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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멕시코 만 원유 유출 사건을 보고

원종훈 목사 (시카고 그레이스교회)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었던 남아공 월드컵이 스페인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월드컵에 세계 이목이 집중될 때, 그 덕을 본 곳은 다름 아닌 영국의 석유회사 British Petroleum이다. 세계적인 종합에너지회사 BP는 지난 4월 20일 멕시코 만에서 일어난 석유시추시설 폭발로 곤혹을 치루고 있었다. Deepwater Horizon호 폭발로 불리기도 하는 이 사고는 11명의 시추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갔으며 미 동남부지역을 재해지역으로 몰아넣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해상 기름유출사고이다. 월드컵 때문에 시간을 벌 수 있었으니 BP입장에서는 고마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전 사고처럼 손쉽게 처리할 줄 알았다. 유출원유도 시추선에서 나오는 것이라 쉽게 생각했다. 그러나 심해 시추파이프에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는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무인 잠수정, 대형선박, 톱킬작업, 심해로봇 등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점점 넓어져만 가는 피해지역에 대해서는 기름띠 제거작업에 책임을 지고 화학유화제를 대량 뿌려보았고 몇 개 주에 오일펜스를 만들거나 모래제방을 쌓도록 했다. 그간의 노력으로 2개월이 지난 후 하루 2만5천배럴 정도의 원유를 수거할 수 있었고 57000평방피트 가스를 태울 수 있었다. 하지만 BP는 어떻게든 책임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며 천문학적인 재정타격 때문에 도산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또한 이 모든 책임을 BP에게 지우고 뒷짐 지고 있던 오바마 대통령도 초기대응에 실패했다는 여론에 따라 정치적 부담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와중에서도 BP주식으로 인해 횡재한 사람들이 있어서 사고원인으로 주가조작을 지명해 의심하는 사람들까지 생긴 것을 보니 향후 책임론이 복잡하게 될 것 같다.

사고의 책임소재확정이 사고의 근본해결책은 아니다. 더 큰 재앙을 막는 것이 우선이다. 한반도보다 넓은 기름띠가 생겼고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새떼들과 바다짐승, 어조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어업재해지역 선포로 인한 생계유지곤란은 그나마 해결책이 있다지만 숨 쉬지 못해 죽은 바다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고맙게도 지난 12일 심해로봇의 활동으로 유출기름 전량을 회수할 수 있는 뚜껑을 덮었으며 근본적 문제해결책인 감압유정도 생각보다 이른 7월말 경에 설치될 수 있다고 하니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지금부터 더 심각해질 것이다. 사고조사와 각종 법정싸움을 말하는 것 아니다. 이미 파괴된 생태계 말이다. 직접 관찰여부를 떠나 또한 축소 은폐여부를 떠나 큰 몸살을 앓고 있는 생태계를 어찌할 것인가? 곳곳의 환경오염사례가 보여주듯 시간이 흐를수록 그 피해는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우리에게 다가올 것인데 어찌할 것인가?

차제에 그리스도인의 자연 및 환경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좋게 창조하셨다. 그 좋은 상태를 유지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세상을 다스리라는 문화명령을 자연 파괴의 정당성 주장근거로 사용할 수는 없다. 도시화, 산업화, 과학의 발전, 인간중심의 세계관, 인구편중, 불안정한 경제구조 등에서 기인한 각종 사회병리현상이 키운 인간의 욕심이 문제다. 지구라는 땅 속에 숨은 각종 자원은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지구라는 거대한 땅 덩어리 자체를 생산적으로 유지하는 데도 필요하다.

그래서 자연자원을 사용할 때는 그것이 재생성 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줘야 한다. 이번 사고로 정치적 경제적 손실은 물론 환경손실이 크다. 전자는 비교적 어렵지 않게 회복되겠지만 후자는 그렇지 않다. 자연이라는 이름의 오랜 세월이 흘러야 한다. 환경을 오염시키면 그 피해는 언제나 인간에게 되돌아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창조신앙을 지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나서야 한다. 교회가 자연 및 환경 교육을 해야 하며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환경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크리스천기업들은 환경에 이바지 할 몫을 구별해야하며 위정자들은 지역이나 정당, 사상이나 이념을 넘어서 환경보존을 위해 협력해야 한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을 만드는 사람이 오염되지 않은 곳에서 살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것이며 문화명령을 제대로 이해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자연과 사람을 동시에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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