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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대학교 학비융자와 빚

전 덕 영 목사 (보스턴장로교회 담임)

뉴욕타임스가 최근에 미국 중산층 한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학학비융자(student loan)에 관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실었다. ‘콜트니 므나’(Cortney Munna)와 그녀의 어머니는 대학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이름 있는 좋은 대학교를 가기로 결심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결정하는 학교가 투자가치가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콜트니는 뉴욕 대학(NYU)에 입학을 해서 졸업했는데 졸업 후에 그들은 10만 불의 빚을 지게 됐다. 은행과 정부기관에서 매년 콜트니에게 수업료를 위해 대출을 해주었는데 이 대출은 학생이 대학졸업을 한 후에 환불능력이 있는 지를 가늠해보지도 않고 해준 대출이었다. 2005년에 NYU를 졸업한 현재 26세의 콜트니는 10만 불에 대한 부채를 갚는 것을 연기하기 위해서 지난 5년 동안 계속 야간학교에 등록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방법으로 학비융자에 대한 빚을 갚아 나가는 것을 연기할 수는 있었지만 빌린 학자금에 대한 이자는 계속 더해졌다고 한다(Ron Rieber, Placing the Blame, New York Times, 5/28/2010).

대학교 학비융자로 인한 부채는 서브프라임 문제와도 비슷한 현상이라고 하는데, 2000년 이후로 많은 사람들은 집값이 계속 올라갈 것을 예상하고 부동산시장의 거품으로 비싸진 집을 대부분 은행돈을 빌려서 샀으나 집값이 갑자기 하락하게 되자 집을 팔기가 힘들어지고 또 곤두박질 친 경제사정으로 인해 은행융자를 갚느라고 고통하며 또 일부는 파산을 하게 된 경우와 같다고 한다. 대부분 NYU 같은 사립대학교들은 학생들이 연 5만불이나 되는 학비를 융자할 경우 졸업 후에 갚을 능력이 있는지를 조사하지도 않고 무조건 학비를 빌리도록 허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정부나 은행에서 학비를 쉽게 빌려주기 때문에 학교는 학교의 예산을 줄이는 선택을 하기보다는 매년 학비를 올리는 쉬운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비는 인플레이션의 두 배 이상으로 매년 올라가고 있다고 한다(Anne Marie Chaker, Students Borrow More, The Wall Street Journal, 9/4/2009). 그러나 대학들은 학생들을 유치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경제능력이 안 되는 학생들에게 등록금이 싼 학교를 가라고 조언하지 않는데다가 또 학생들이나 부모의 입장에서도 좋은 학교라는 평판이 있는 대학을 가야만 성공의 길이 열리는 것처럼 믿기 때문에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린다고 한다. 대체로 대학학비융자로 인한 부채는 “괜찮은 빚”으로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대학교육을 통해서 졸업 후에는 수입이 높은 직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서 좋은 수입을 보장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학학비융자로 인한 빚은 가장 해로운 빚 중에 하나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학비의 빚 위에 더해서 대학원 학비의 빚은 더 큰 짐이 된다.

‘미셸 비수티’(Mtchelle Bisutti)는 콜럼버스 오하이오에서 의사로 일하고 있는데 2003년 의대를 졸업했을 때 그녀의 학비로 인한 부채는 25만불이었으나, 그 이후로 빚은 55만불로 늘어났다고 한다. 레지던트를 하는 동안 학비융자의 부채를 갚는 것을 연기했고 그로인해 복리이자와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벌금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한다. 미셸의 경우는 의사가 된다고 해서 학비부채에서 쉽게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학비부채는 집 융자금이나 크레딧카드 빚과는 달리, 개인이 파산신고를 해도 끝까지 갚아야 하기 때문에 학비융자로 인한 빚은 벗어나기가 힘들다고 한다(Mary Pilon, The $555,000 student-loan debt, The Wall Street Journal, 4/8/2010).

대학을 졸업하면서 크고 작은 대학의 학비 빚을 진 젊은이들은 빚을 갚기 위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인 집을 산다든지, 결혼을 한다든지, 자녀를 낳아 양육하는 일 등을 미루고 있다고 한다. 안 그래도 현 정부는 빚으로 빚을 해결해보려고 하지만 더 큰 채무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어 우리의 후손들의 경제적 앞날이 암담해 보이는데, 대학공부를 하기위해서 얻는 학비융자가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것 뿐 아니라 젊은이들의 앞날을 노예로 삼는 것과 같은 결과에 이르는 것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경제 형편에 맞는 대학교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잠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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