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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갈등과 교회를 바라보며

최해근 목사

몽고메리교회 담임목사

근자에 한일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고 있습니다. 2018년 10월 30일 한국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 철강기업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의 재상고심에서 신일철주금이 이 씨 등에게 각 1억원씩 지급하라는 원심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이후 신일철주금이 배상을 하지 않자 2018년 12월 31일, 징용피해자 측에서 신일철주금이 보유한 한국 국내주식에 대해 압류신청을 내었고 법원이 곧 바로 받아들입니다. 신일철주금 측은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한·일 청구권협정과 일본정부 입장에 반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한일 청구권 협정에 대해 정리해 봅시다. 1965년에 맺어진 한일 청구권협정 제2조 제1항은 "양 체약국 및 그 국민의 재산, 권리 및 이익과 양 체약국 및 그 국민 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이 된다는 것을 확인한다”고 규정합니다. 일본정부는 이 조항에 의해 한국인에 대한 전후보상(배상)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얼핏 보면 한국 측에서 상식에 맞지 않는 논리를 펴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가지고 있는 이런 법리적인 입장이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바뀌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일청구권협정(1965년) 이전에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1951년), 일소공동선언(1956년)에도 한일청구권협정과 유사한 청구권 포기 조항이 있었습니다. 그런 조항으로 인해 일본의 원폭 피해자들과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이 미국과 소련을 대상으로 보상청구를 할 수 없다고 해서 일본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국가는 ‘조약으로 인해 포기된 것은 외교보호권이며 개인(일본인 원폭피폭자와 시베리아 억류피해자)의 손해배상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국가가 보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일본국가에 보상을 요구하지 말고 당사국 국가인 미국과 소련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라는 입장이었습니다.

더군다나 1990년대 초 일본정부는 한국인 피해자에 관해서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포기된 것은 외교보호권일 뿐 개인 청구권은 소멸되지 않았다고 인정합니다. 그 후 10년 동안 일본 외교부가 발행한 문서에도 ‘청구권 포기 조항으로 포기된 것은 외교보호권이라는 것이 일본정부의 일관된 견해’라고 명기를 했습니다. 그러다 2000년 경 전후배상 재판에서 일본정부에게 불리한 판단이 계속해서 나오자 갑자기 자신들의 입장을 뒤집어 전후보상 문제는 청구권 포기 조항으로 해결되었다고 주장하기 시작합니다.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 일본 자국인으로부터 보상 청구를 받았을 때와 그 반대로 일본이 타국인 피해자로부터 배상 청구소송을 당했을 때의 입장이 완전히 다른 모순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일본인 야마모토 세이타 변호사가 ‘한일 청구권 협정 해석의 변천’이라는 글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일본의 이중적인 잣대가 오늘 한국과 일본 사이에 일어나는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는 셈입니다.

전후 배상과 관련된 일본정부의 이중적인 모습은 일본 기업측에서도 그대로 반영되고 있습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의해 피해를 당했던 중국에서도 일본을 대상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1998년 중국인 피해자 대표 5명이 니시마츠건설을 상대로 일본 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합니다. 1심에서는 청구시효인 10년이 지났다는 이유로 일본기업의 손을 들어줍니다. 반면 2심에서는 “현저한 인권침해에 시효를 적용하는 것은 권리남용”이라는 판결을 함으로써 원고측이 승소하게 됩니다. 결국 니시마츠건설은 3심까지 진행했고 2007년 4월, 일본 도쿄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 해당)에서 ‘중일공동성명’에 따라 중국인 개인은 피해보상 청구권이 없다며 최종적으로 승소하게 됩니다.  

니시마츠 건설회사가 재판에서는 이겼지만 문제는 중국정부와 중국인들의 강력한 반일여론이었습니다. 결국 2007년 10월 양측이 도쿄 간이재판소에 화해신청서를 내었고 니시마츠 건설회사는 공개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진심으로 사죄의 뜻을 표하고 피해배상과 실종자들의 조사 및 기념비 건립사업을 추진하게 됩니다. 

이와 유사하게 일본 기업이 전쟁피해를 입었던 중국인들에게 사과 및 배상을 해 준 사례는 ‘가지마건설’ ‘닛폰야킨코규’(스테인레스 철강회사) 그리고 2015년 7월에는 대기업에 해당되는 ‘미쓰비시 머티리얼’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본기업이 이렇게 행동을 취한 배경에는 중국정부와 국민들의 반일여론 뿐만 아니라 중국이라는 거대한 시장과 국력의 뒷받침이 있습니다. 한 국가의 국력이 국가 사이의 의사결정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냉엄한 현실을 우리 눈으로 보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신앙인들이 과연 무슨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성경을 삶의 기준으로 정하고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힘과 돈이 지배하는 세상의 흐름을 거부하고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갈 때 그곳에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과 나아갈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순종하고 따르는 한국교회와 일본교회가 중심이 되어 한 생명의 가치를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지나간 양국의 역사를 정직하게 해석하고 앞으로 우리가 가야할 길을 찾는다면 분명히 한일 정부와 기업이 선뜻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 무거운 질고와 아픔의 역사를 따뜻하게 그리고 평온하게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조용히 하나님 앞에 눈물과 무릎으로 나아온 한국교회와 일본교회의 모습을 소망하며 그 날을 위해 기도합니다.

 

08.10.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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