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엽 목사 (오렌지 카운티 나침반교회)
지난주에 가족의 일로 한국을 다녀왔다. 메르스의 영향으로 한국에 가는 것을 재고해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이미 여러 달 전부터 계획된 일정이었고 계속 기도해온 제목들이 있었기 때문에 강행하였다. 전국을 휩쓰는 메르스의 영향 때문에 한국 내에서의 여행을 자제하였고, 그래서 당연히 무리한 만남을 피하고 처음부터 목표했던 가족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며 일정을 최소화하였다. 메르스의 영향력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지만 온 세상이 메르스로 뒤덮여 있는 듯이 매일 신문과 TV에서 헤드라인 뉴스로 다루기 때문에 많이 부풀려져 있어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이 더 큰 어려움은 아닐까를 생각하며 메르스보다 더 무서운 게 메르스를 두려워하는 마음이라 여겨졌다. 메르스는 손을 자주 닦는 것만으로도 전염을 피할 수 있고, 잠복기에는 감염되지 않으며 발열이 있는 사람과의 접촉이나 밀폐된 공간에서 함께 있는 경우에만 전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 또한 메르스 바이러스는 건강한 사람들의 면역력에는 당할 수 없다. 침투했다가도 이내 사그라진다. 제대로 수면을 취하고 적당히 운동하며 영양을 골고루 갖춘 균형 잡힌 식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막을 수 있다. 과도하게 두려워하는 자체가 더욱 큰 문제일 수 있다.
메르스는 공기를 통해 전염되지 않지만 두려움은 공간을 초월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퍼져나간다. 지난 한 달여 동안 확진자는 1백 여명에 불과하지만 두려운 마음은 삽시간에 전국민의 마음을 점령하였다. 메르스는 두 주간의 잠복기라도 있지만 두려움은 뉴스 한토막으로도 즉시 발병한다. 적절한 온도와 습도는 메르스의 온상이지만 메르스 괴담은 두려움을 기하급수적으로 증폭시키고 있다. 메르스로 인해 이미 병을 가지고 있는 소수가 죽었지만 두려움의 피해는 더 크다. 두려움은 가족도 의심하게 만들고 이웃조차 돌아서게 만든다. 메르스에 대한 불안이 공연했고 증폭되었다는 것은 인천공항을 나올 때도, LA공항을 들어올 때도 아무런 검사도 하지 않는 것으로도 증명되었다. 이야기의 핵심은 메르스에 대해 조심하는 것까지는 옳지만 과도하게 불안과 불신과 두려움을 양산하는 것은 문제라는 뜻이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때 전에 보았던 영화 “명량”을 다시 보았다. 12척의 배로 300여척의 왜선을 이길 수 있을까에 대해 이순신 장군을 빼고는 모두가 진다고, 질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싸우기도 전에 조선수군의 사기는 이미 바닥을 쳤다. 그래서 이순신은 무엇보다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순신은 일본이 처형해서 보낸 조선 군사들의 머리들을 보고는 겁을 집어먹고 탈영한 군사의 목을 직접 베어버림으로 기강을 세웠다. 그러면서 이순신이 외친 말, “군율은 지엄한 것이다!”(Discipline is absolute). 이런 행동이 흔들리는 군사들의 마음을 다잡게 만들었다. 또한 아들과 소수의 조선배로 엄청난 다수의 왜선을 대항해서 이길 수 있는지를 진지하게 토론하는 자리에서 이순신은 “이길 수 있는 복안이 없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독버섯처럼 퍼져있는 두려움이 문제”라고 하였다. 그가 유심히 관찰한 명량의 물살을 이용한 필살기조차도 두려움을 떨쳐야 승리를 거두는 데 이용될 수 있다고 하였다. 게다가 마지막 명량해전이 벌어지기 직전에 자신의 직속부하들이 무모한 전투를 그만두자고 고언을 하였을 때는 마을 전체를 불사르고는 “아직도 살고자 하는 자가 있느냐? 이제 죽음은 피할 수 없다. 육지라고 무사할 수 있느냐? 바다에서 죽고자 이곳을 불태운다. 살고자 하는 자는 필히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는 자는 살 것이다. 병서에 이르기를 한 사람이 길목을 잘 지키면 천 명을 떨게 할 수 있다고 한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처한 형국을 두고 한 말이 아니더냐?”라면서 결사항전으로 이끌었다. 이순신은 백성들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물리치고자 하였고, 그가 가장 최전방에서 적선을 상대해서 두려움 없이 싸웠기에 역사에 길이 명량해전이 되었다.
52일 만에 거대한 예루살렘의 성벽을 건축한 느헤미야와 그의 백성들에 대하여 원수들은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하려고 수없이 겁박하였다(6:9,13,14,19). 원수들은 두려움이 엄습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사악한 의도를 눈치 챈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이미 원수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백성들을 격려하였다(4:14).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이다. 작은 일이라도 시도하려면 우선 두려움을 극복해야 한다. 주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는 마음 대신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을 주신다(딤전1:7). 성경에서도 일년내내 매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무려 365번이나 말씀하였다고 하지 않는가? 진정한 용기란 두려워하면서도 올바른 일을 하는 것이라는 경구가 마음에 와 닿는다. 어려울수록 정도(正道)를 걷겠다는 마음의 태도가 중요하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