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한 자 마노아 부부가 기도할 때 이스라엘을 구할 구원자로 하나님께 바친 나실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기도의 응답으로 기쁨으로 안은 아들 삼손입니다. 삼손은 부정한 음식을 금하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나실인으로 해선 안되는 규율과 의무는 주어 졌으나 사사로의 부름은 억지의 굴레가 되고 거추장스런 왕관인 셈이 됩니다.
마음으로 섬기지 않는 시대에 하나님께 바쳐졌으니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거룩한 복을 복으로 인식하기 전에 복도 오히려 저주가 된, 제 아무리 귀한 복이 저주가 된 셈입니다. 삼손은 이방여인과 좋아하여 반대하는 부모를 꺾고 결혼합니다. 자신에게 자신의 육체의 힘센 것을 믿고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했으니 죽을까봐 사색이 되고 나실인으로 믿음의 사명자 사사로는 하나님은 자랑하는 힘의 공급자일 뿐 하나님에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삼손이 가까이 지내는 친구들은 거의 이방인 블레셋 사람들입니다. 자랑으로 사람을 파리처럼 죽여대고 도무지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이란 눈꼽만큼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며 삼손의 육적인 애정 행각의 행패를 통해서라도 힘겨워하는 부르짖는 이스라엘을 이방인에게서 보호하여 주십니다. 비록 주의 종이 모자라고 죄에 빠져 있어도 사용하시어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 계획에는 차질이 없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죄로 물든 주의 종을 영원히 그대로 방치하시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거룩과 공평과 사랑의 매로 세상을 다스리는 그 솜씨는 참으로 놀랍고 놀랍습니다. 삼손을 통해 이스라엘의 왜곡된 선민의식을 뚜렷이 엿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민의 중심된 책임은 빠져있고 그 권리만을 붙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선민은 그 삶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이 드러나 빛과 소금으로 세상을 다스리기 위함이지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외적 번성이 아닙니다. 세상적 사역관에서 비롯된 삼손의 사사역할은 이스라엘을 이방인의 압제에서 보호하면 되는 자입니다. 다른 사사들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중심은 주께서 멀지만 주어진 괴력만 믿고 까부는 최악의 모델인 삼손을 주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힘의 남용의 결과를 통해 배우고 삶 전체가 주님께 드려지는 그런 영적인 개혁이 먼 훗날 언제라도 오길 염원하시는 주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전해집니다. 사사로서 이스라엘을 향한 애국심에서라면 다행입니다만 순전히 정욕에, 복수심에, 솟아오르는 혈기로 보통 사람으로 상상조차 못한 횡포를 자행합니다. 완전히 아이들 수퍼히로 영화를 보는 기분입니다.
손에 닥치는 모든 것이 혈기를 부리는 도구가 됩니다. 20년간 힘자랑으로 사사노릇을 뽐냅니다.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니… 제 아무리 힘이 센들 곰은 여우에게 지게 마련입니다. 매번마다 소동을 피우곤 여자를 떠나버리더니 이번에는 단단히 임자를 만나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에게 빠집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사주로 집요하게 졸라대는 여자에게 사실을 토설하고 자신의 몸을 맡깁니다. 자신의 힘의 비밀만은 이제까지 나름대로 지켰으나 성을 미끼로 졸라대는 통에 죽기로 고민하다 못 견디고 여자에게 속아 넘어가 결국 정욕에 눈이 먼 값을 톡톡히 치릅니다. 살살 꼬여 다리에 베개하고 ‘날 잡아 잡수’ 머리를 베고 잠이 든 틈에 머리를 몰래 밀어버리니 하나님의 주신 힘을 잃어버립니다. 개망나니 짓으로 힘을 남용하며 자랑하던 그 힘을 제 손으로 내버린 셈입니다. 제 복을 제 발길로 찬 셈입니다. 눈이 뽑히고 놋줄로 매여 옥중에서 맷돌을 돌리는 노리게 짐승의 취급을 받습니다.
아무리 죄를 지어도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한 번 택하신 자는 하나님은 결코 그대로 버리시지는 않습니다. 그토록 자랑하던 힘이 스스로에게 저주가 되어 괴력으로 짓밟던 이방 원수의 조롱의 대상이 되도록 교만을 낮추십니다. 그의 정신연령이 워낙 어려서 하나님 앞에 범죄함을 얼마나 철저히 회개했을지는 의문입니다. 그가 이해한 하나님은 그의 힘의 근원이실 뿐입니다. 맷돌을 돌리며 고작 생각이 자신의 눈이 뽑은 자들에 대한 복수심이 고작입니다. 죽어도 하나님의 나실인으로 제대로 살지 못해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대한 회개보다는 속임 당함을 원수 갚는 빼앗긴 것만 분할 뿐입니다. 끝까지 사사로서 책임보다는 죽음으로 자기 것 외엔 관심 없는 철저한 못난 자기중심의 이기주의 인간이었습니다. 눈이 뽑혀도 정신을 차렸는지? 그의 생애를 보며 요즘의 많은 사역자들을 생각해 봅니다.
과연 요즘 세상에 주님을 사랑하여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그의 나라의 확장위해 전심을 다해 바치는 이들이 얼마나 되겠는지? 하나님의 뜻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를 이용해 자신의 문을 높이고 이를 위해 양무리를 수단으로 삼는 삯꾼 목자로 변질된 많은 이들을 대하며 나 자신은 어떠한가? 가슴을 치며 통회합니다. 주님을 몰라 방황가운데 고통 하는 이들에겐 눈을 감고 사사로이 정욕에 빠져 선한목자의 길을 버린, 요즘 전체적으로 낮아진 목회자들의 도덕을 통탄하며 애통의 기도를 드립니다. heenlee55@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