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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소금으로...

그때가 그립습니다

엄규서 목사 (월셔크리스천교회)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대학후배 A장로가 찾아왔습니다. 후배는 몹시 충격을 받은 표정으로 민망해하며 말을 꺼냈습니다. “목사님! 저는 어제 큰 충격을 받았어요.” “뭔데?” “주일날 교회를 갔더니 제가 전도한 성도가 저에게 장로님하고 부르더니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는데요 물어봐도 돼요 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라고 했더니 얼마나 교회를 더 다니면 수요, 금요 예배를 빠져도 됩니까? 하더라고요 글쎄 그 말을 듣고 어찌나 충격을 받았는지 밤새 회개를 했습니다.” 후배의 말은 이어졌습니다. “신앙의 모범이 돼야 할 제가 사업에 바쁘다고 수요, 금요 예배를 등한시했습니다. 과거에는 모든 예배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는데 그의 말에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앞으로는 신앙생활을 똑바로 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후배의 이 말을 듣고 생각해보았습니다. 몇 십리 먼 거리를 오직 말씀을 듣기 위해 밤낮으로 교회를 찾았던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이산 저산 찾아다니며 기도에 열심을 다하던 그 때, 예배 후 삶은 고구마를 먹으면서도 기쁘고 감사하던 그 시절, 어쩌다 국수라도 삶아먹으면 얼마나 좋았던지.... 일년에 한번 크리스마스 ‘새벽송’ 돌기 전에 무를 썰어 넣고 끓인 멀건 소고기국은 잊을 수 없는 별미로 기억됩니다.

‘새벽송’이야기를 하려니 웃지 못할 기억이 떠오릅니다. 중학교 때인가요, 7-8명이 한조가 돼 각각 맡은 지역을 다니며 ‘새벽송’을 돌다가 장로님 댁에 가게 됐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우리 무리를 위해 귀한 것을 대접하고 싶어서 커피를 타 주셨습니다. 우리는 처음 먹어보는 커피를 마셨는데 커피 맛이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쓴 것은 쓴 것이지만 니글거리는 것이 토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그 귀한 것을 우리를 위해 주셨는데 차마 말은 못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한 후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커피는 더 이상 마실게 못되는 것 같아 미국사람은 참으로 이상하네, 이런 이상한 것을 먹다니 하며 속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성탄축하예배가 끝나고 장로님은 민망한 표정으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어제 속이 괜찮았니? 사실은 어제 커피에 설탕을 넣어야 하는데 미원이 설탕인줄 알고 잘못 넣어서 그만.......” 그래도 배고픔을 참아가며 주일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주일학교, 학생부, 장년부, 성가대로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열심을 다해 봉사하던 그 때 그 신앙이 그립습니다.

교회서 부흥회를 한번하면 밤을 새고 철야하며 기도했고, 부흥강사님을 집에 모셔 식사대접하려고 아끼고 아끼던 암탉을 잡고, 말씀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수첩에 적고 또 적고 성경책에 빨간 색연필로 줄그어 간직하고 싶어 하던 마음들 말입니다. 부흥회 기간이 되면 축제의 시간처럼 교회 안팎을 청소하고 온 교우들이 기도하며 은혜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말씀 받을 준비를 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 당시 부흥강사님들은 자주 ‘말씀을 먹으라!’ 소리치셨습니다. 이를 들은 교회 노인 한분이 성경책을 찢어서 먹은 일도 있었습니다. 우리교회 한 노인 한분이 목사님께서 오늘 본문은 하박국이라고 하시니 그 노인 왈 “목사님! 제 성경에는 호박국은 없습니다”라고 했다는 일화도 기억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귀하게 여기던 그 때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흰구름 뭉게 뭉게 피는 하늘에...” 목청이 터저라 노래하고, 말씀배우고, 여러 가지 활동으로 재미있었던 기다리던 즐거운 여름성경학교를 추억해봅니다. 성경학교를 4-5일정도 해도 조금도 지루하지 않고 성경학교가 끝나는 것이 어찌나 아쉬웠던지.... 여름성경학교를 앞두고 홍보를 위해 주일학교선생님이 가슴 앞뒤에 광고판을 달고 맨 앞에서 징과 꽹과리를 울리고 가면 그 뒤를 아이들이 노래를 부르며 온 동네를 누볐던 기억이 납니다.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과 교회를 섬기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극성스런 성도들은 이산저산 다니며 나라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복음화에 앞장서며 신앙생활을 했었습니다. 추운 겨울 성령을 받겠다고 산에 올라 바위위에서 밤이 새도록 기도하는 것은 물론 나무를 잡고 얼마나 열심히 기도했던지 나무를 뽑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가는 것을 나무 뽑으러 간다는 둥 기도원을 다녀온 사람이 있으면 나무를 몇 그루나 뽑았냐는 둥 하는 말들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토요일이면 이발소에 가셔서 단정하게 머리를 다듬으시고 주일헌금을 하시기 위해 신권으로 헌금을 챙기시던 아버지 어쩌다 신권이 없으면 다리미로 다려서 봉투에 넣어 주일을 기다리던 아버지와 주일아침 곱게 한복을 챙겨 입고 교회가시던 어머니 그 모습 그 때가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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