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근 목사 (주사랑선교교회 담임)
현대 교회 안에는 세상의 이치라는 거목과 성공이라는 거목이 뿌리깊게 퍼져 있다. 이 두 거목은 자신들의 세계로 사람들을 유도해간다. 세상 이치의 거목은 세상 이치에 따라 매우 반듯해 보이는 도덕교육과 품위 있어 보이는 교양 그리고 상식이라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의 성향을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매우 도덕적이고 교양 있고 상식적인 사람이 되는 것을 기독교 신앙의 목표로 삼는다. 사회적 신분의 품위가 교회내에서도 그대로 동일하게 판단을 받고 사회적 교육 수준이 교회내에서도 그대로 동일하게 판단을 받고 사회적 가문의 배경이 교회내에서도 그대로 동일하게 판단을 받는다. 이런 경우 세상의 표준과 교회의 표준이 거의 일치하게 나타난다. 자연스럽게 신분별, 학력별, 가문별로 보이지 않는 계층이 형성되고 그렇게 형성된 그룹들끼리 가까운 교제를 가지게 된다. 지금은 소천한 고 하용조 목사님의 오래전 하신 한마디 말씀이 떠오른다.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던 어떤 집사님이 하용조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교회에 등록을 하고 첫 번째 구역모임을 갔었다고 한다. 그런데 구역모임의 너무나 수준 높은(?) 분위기에 이 분이 기가 죽어서 자기는 이 교회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판단을 하고 하용조 목사님께 말씀을 드리고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그때 하용조 목사님께서 ‘이것은 우리 교회의 위기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로 이루어진 교회 안에서 수준차이를 느끼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며 영적 어린아이 단계에 머무는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세상 이치라는 거목은 그렇게 세상의 잣대로 신앙의 세계를 가늠하려고 한다. 다음으로 성공이라는 거목은 어떤가? 성공이라는 거목은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가치관으로 사람들을 독려해간다.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성공은 곧 하나님의 뜻이라는 등식을 설정해 놓고 달려간다. 매우 헌신적이며 열정적인 자세로 삶에 임한다. 성공이라는 목표 때문에 헌신하고 성공이라는 목표 때문에 희생하고 성공이라는 목표 때문에 뼈를 깎는 고통과 어려움을 감내한다.
그러나 그 성공은 하나님의 영광과는 거리가 먼 스스로의 성취욕을 만족시켜주는 것일 때가 많다. 세월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중의 하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삶에 대한 자세가 조금씩 진지해진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앞에 서는 자기 자신의 양심에 대하여 보다 순수해져간다. 이전의 세월 속에서 성공이라는 거목을 따라 추구했던 삶의 흔적들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자, 세상의 이치라는 거목과 성공이라는 거목의 실태를 대하면서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되는가? 무엇이 빠져있다고 느끼지 않는가? 예,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빠져있다. 두 거목에 동참하시는 분들은 금새 십자가는 항상 품고 있다고 반론을 제기하실 것이다. 맞다. 이미 예수님을 믿었으니까 십자가는 항상 품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것과 그 필요성에 있어서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대충 적당히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두 거목이 노리고 있는 것이다. 두 거목이 추구하는 사상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십자가 진리의 절대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만약 당신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두 거목의 소리를 단호히 거부하고 미워하라.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를 절대적으로 집중하고 이전보다 더욱더 사랑하고 가까이 하라.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것이다. 세상 이치와 성공을 지향하는 두 거목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진리는 영원토록 서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