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수 목사 (남가주사랑의교회)
유대계 철학자요 신학자인 마틴 부버(Martin Buber)는 “참된 삶은 만남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의 삶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우리의 삶 속의 모든 ‘만남’은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우연’이 아닙니다. 사탄은 ‘만남’이 우연, 혹은 운이나 팔자소관이라고 미혹하지만 성도들에게 만남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 가운데 허락하신 필연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남에는 좋은 만남과 잘못된 만남이 있습니다. 좋은 만남은 인생의 축복 중의 축복입니다. 닫힌 미래를 열어주고, 관계를 회복케 하며 병을 낫게 하고 죽음에서 건져주기도 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합니다. 이국땅에서 과부가 된 시어머니 나오미와 며느리 롯의 만남, 이방인으로 젊은 과부가 된 롯과 그 가문을 책임져준 ‘기업 무를 자’ 보아스와의 만남, 성전 미문의 앉은뱅이 거지와 그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걷게 한 사도 베드로의 만남, 깊은 우정으로 다윗의 생명을 지킨 다윗과 요나단의 만남, 마르지 않는 생수를 얻게 한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만남, 그리고 오늘날 미국 땅에서 이민생활을 하는 나와 예수님과의 만남... 이 모든 ‘만남’들은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축복안의 필연, 즉 ‘좋은 만남’입니다. 반면에 ‘잘못된 만남’이 한사람의 인생과 역사에 주는 피해는 큽니다. 삼손과 블레셋 여인과의 만남은 하나님과 부모에게 큰 슬픔을 주었고, 르호보암과 젊은 신하들과의 만남은 백성들에게 힘든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지게 했고, 산발랏과 도비야의 만남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했고, 아합왕과 이세벨의 만남은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 역대 왕 중에 가장 악한 왕이라는 오명을 역사에 남기게 했습니다. 잘못된 만남은 관계를 깨뜨려 원수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에 동참하게 하여 가문을 허물고 민족을 망하게 합니다. 인생의 깊은 고통과 아픔을 겪게 합니다. 물론 잘못된 만남도 하나님의 섭리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잘못된 만남은 하나님이 주도하신 만남이라기보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인생을 망하게 하는 ‘잘못된 만남’도 생명을 살리는 ‘좋은 만남’으로 바뀌게 하는 은혜를 십자가를 통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의 모든 만남은 십자가를 통해서만 이루어져야 합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인간이 만나는 곳, 구세주와 죄인이 만나는 곳, 부모와 자식이 만나는 곳, 부부가 만나는 곳, 성도와 불신자가 만나는 곳, 목사와 성도가 만나는 곳, 순장과 순원이 만나는 곳, 그리고 죄인과 죄인이 만나는 곳입니다. 십자가 안에서는 축복 되지 않은 만남이 없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모든 만남은 예수님의 맛이 나는 ‘맛남’이 됩니다. 기생이었던 라합, 성전 미문에서 구걸했던 거지, 유럽에서 비단 장사를 했던 루디아, 질병에 걸려 고생했던 에바브로디도, 피혁공 시몬, 크리스천들을 박해했던 사울,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게 밑에서 재정을 관리했던 내시, 이탈리아의 군대장인 고넬료,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혼혈아로 태어난 디모데,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 그리고 그 외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 맛을 내는 ‘맛난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모든 성도들의 모든 만남이 예수의 맛을 내는 ‘맛남’이 되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