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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진 아이

이성자 기자

나일강은 아프리카의 중심지인 적도 지역에서 수원이 시작되어 지중해의 삼각주까지 약 6,650km에 달하는 세계적으로 가장 크고 장대한 강이다. 나일강은 산악지대와 호수와 늪지대를 횡단하면서 아프리카 북동부의 동물과 식물의 풍요로운 생명의 서식처를 마련해주고 있으며, 마침내 강 하류의 비옥한 삼각주 지대를 형성한 후에 지중해로 유유히 흘러 들어간다. 나일강의 하류에는 강력한 이집트의 통치지대로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의 하나이다.

어느 날, 나일강의 한적한 하수에 한 아이가 버려졌다. 당시에 이집트의 바로 왕이 히브리인들의 종족을 말살하기 위한 법령에 따라서 어쩔 수 없이 아이가 가족에 의해서 버려진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버려진 아이는 억압당하는 약소민족의 슬픔과 함께 태어났다. 행복하게 살 권리를 가지고 세상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생명이 보호되기를 거부당하고 무참하게 강물에 버려져 죽기만을 기다리는 불행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철학자 하이데거가 “인간은 버려진 존재라”고 말했지만, 사람이 버려진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의 존재란 얄궂은 것, 이 아이가 버려진 것과 거의 같은 시각에 한 여인이 그의 시녀들과 함께 하필이면 이 아이가 버려진 나일강 하수가에 목욕하러 나왔다. 버려진 아이는 여인에게 발견되었고, 순간 그녀는 여자만의 특유한 모성애에 따라서 버려진 아이를 갸륵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래서 버려진 아이는 극적으로 물에서 건져지게 되었다. 

 “열고 그 아기를 보니 아기가 우는지라 

그가 그를 불쌍히 여겨 이르되 이는 히브리 사람의 아기로다”(출 2:6)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구원의 손길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의 경륜에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은 비참한 환경에서 버려진 한 생명이 하나님의 목적에 의해서 다시 건져진다는 생의 극적인 전환을 깨닫게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 자신은 일찍이 나일강과 같이 넘실거리는 강물의 위기 속에 무참하게 버려졌었다. 그런데 누구인가의 손에 의해서 건져지게 되었다. 누군가의 입술에 의해서 복음을 듣게 되었다. 그래서 구원을 얻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삶의 의식과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다. 이 또한 구원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물에서 건져진 아이는 ‘물에서 건져졌다’라는 뜻을 지닌 “모세”라는 이름으로 살게 되었다. 어린 모세는 친모를 유모로 맞아 어려서부터 자기 민족의 얼과 정신으로 교육을 받았으며 자기 민족을 해방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사십 대까지 살았다. 그리고 많은 시련과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는 자기 민족을 바로 왕의 억압에서 구원하는 위대한 사명을 완수할 수 있었다. 

세상이라는 나일강의 물결 위에서 건져진 오늘의 나는 과연 어떤 정신과 사명으로 살고 있는가? 지금 나의 가슴속에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어떤 일이 있는가? 스스로 반문해 봐야 할 것이다. 세찬 물결과 악어 떼가 득실거리는 나일강에서 건져진 모세는 그가 구원의 은혜를 체험했으며, 모세는 자기 민족을 바로 왕의 고통에서 구원시켜야 한다는 사명을 가지고 살고 있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10가지 재앙을 이용하여 사명을 완수했다. 

오늘의 현실은 물결이 넘실거리는 위기의 나일강이요, 코로나19 질병과 전쟁과 죽음이 있는 현실은 몰려드는 악어들의 이빨과 같다. 지금은 분명히 위기의 시대이다. 강은 생명의 생존을 돕는 번영의 젖줄이지만 한편으론 그 생명을 잡아 삼키는 위기의 현장이기도 하다. 강을 생명의 안식처로 이용하는 지혜와 더불어, 그 강의 위험에서 건져지는 인생이 되어야겠다. 나만이 건져지는 사람이 되지 말고 다른 사람도 그 숱한 위험에서 건져내는 사람이 되길 소망해 본다.     

sjkcdc@hanmail.net 

 

08.03.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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