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한인교회
아내의 요구로 오랜만에 집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갔다. 삶이 팍팍하여 가까운 공원에 가보지도 못하고 겨울을 보내고 말았다. 공원에는 이미 봄이 찾아와 있었다.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는데 말이다. 이 거대한 드넓은 터를 2천년 동안 그대로 두었다는 일이 신비하기만 하다.
아름다운 공원에는 클라우디아(Claudius41-54AD) 황제가 건축한 웅장한 수로가 있다.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수로가 공원 한 가운데를 가로질러 뻗어 있다. 2천년을 그 자리에서 버티고 서 있는 수로는 높이가 20m 이상은 됨직하다. 로마 제국에 대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제국 로마는 그 옛날부터 좋은 물이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좋은 물을 시민들에게 공급하기 하기 위한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수로 가까운 곳에 30m정도의 길이의 옛 길을 발굴해 놓았다. 길의 시작은 로마 이전의 에투르스족들(주전 7세기)까지 거슬려가야 하는 아주 오래된 길이다. 로마의 라티나에서 시작하여 남쪽으로 191km에 이르는 길이다. 즉 Artena-Anagni-Ferentino-Frosione-Ceprano-Aquino-Teano-Capua, 이런 경로로 이어지는 길이다.
집정관 아피우스가 포장한 군사도로를 기원전 312년에 만들었는데 이 길은 그 이전(BC 432-290)에 건설된 길이다. 이 길에 깔았던 돌들을 파내어 곳곳에 진열했는데 돌의 크기가 굉장하다. 보통 돌 하나가 가로가 30-40Cm, 세로가 역시 비슷했다. 고로 한번 깔게 되면 수백 년 이상을 견딜 수 있는 바위덩어리들이었다. 이런 포장 돌은 로마의 장구한 역사의 단면을 보게 한다. 이 크지 않은 길도 저렇게 커다란 돌로 포장을 하였으니 길의 수명이 얼마나 길었을까 싶다.
길의 폭은 3.8-4.1m로 마차 두 대가 피해갈 수 있을 정도로 설계된 것 같다(참고로 마차 폭은 말 두 마리의 궁둥이 넓이로 1.455m임). 그 옛날 약 2400년 전에 선조들은 이런 고속도로를 건설했다. 그것은 군사도로로 이웃도시와 전쟁을 수월하게 치르기 위함이었다.
이 길을 바라보니 많은 생각이 일어난다. 즉 인생은 누구나 길을 만드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길을 만들 때 반드시 누군가 그 길을 사용하도록 되어있다. 기원전 312년에 아피우스가 세계최고의 군사도로를 만든 것도 사실은 독창적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전에 조상들이 비슷한 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피우스는 이 옛 길에 아이디어를 얻어 보다 넓고 보다 곧고 보다 멀리까지 연결하는 길을 발전적으로 건설하였을 뿐이다.
인생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길을 만든다. 정직하고 바른 삶의 길을 만드는 사람도 있고, 평생 악기를 연주하며 그 길만을 고집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이는 비즈니스로 평생 외길을 가기도 한다. 나 같은 사람은 평생 목회자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삶의 다양한 길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낸다. 마치도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이 아름다움 화음을 이루어내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삶도 나름대로 길을 만드는 삶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 길이 후배나 후손들이 기쁜 마음으로 좇아올 수 있는 길인지 돌아볼 일이다.
끝으로 독립운동으로 평생을 헌신하신 김 구 선생님의 시를 소개한다.
“눈 덮인 들 걸어갈 때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오늘 내가 간 이 길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지니.”
chiesadiroma@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