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수 목사 (남가주사랑의교회)
지난 4월 29일은 로스앤젤레스 폭동 25주기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사건을 경험하셨거나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1992년 4월 29일, 인종차별적인 재판 판결에 불만을 품은 흑인들이 폭도로 변해 무차별한 약탈과 방화를 시작했습니다. LA 폭동은 흑백 갈등으로 시작되었지만, 폭동의 최대 피해자는 한인들이었습니다. 방화와 약탈로 피해를 입은 업소들의 3분의 1, 약 2,800여 개가 한인업소들이었습니다. 이민 와서 피땀으로 일군 생활 터전이 잿더미가 되었고 스스로 일터를 지키려다가 다치고 목숨을 잃은 교포들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가장 큰 피해를 당했던 한인 타운 한복판에 있었던 교회를 섬기고 있었습니다. 폭동이 일어나자 평화롭던 천사의 도시(The City of Angels)는 삽시간에 공포의 도시, 무법의 도시로 변해버렸습니다. 젊은 목사였던 저는 교회의 몇몇 젊은 집사님들과 방화를 막으려고 교회에서 며칠 밤을 새우다가 LA 폭동을 그 현장에서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약탈과 무차별적인 방화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한인 타운 거리, 낮에 자녀들과 함께 나와 아무 거리낌 없이 상점을 약탈하던 양심 없는 주민들, 한순간 무섭고 악한 폭도로 변한 평범한 사람들, 가게를 지키겠다고 장난감 총을 들고 지붕 위에 서 있던 우리의 아버지들, 잿더미가 된 가게 앞에서 울부짖는 교포들의 모습... 이 모든 것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한인들은 소수민족의 설움을 톡톡히 당했습니다. 베벌리힐스(Beverly Hills)와 같은 부촌은 경찰들이 철통같이 지켜주었지만, 돈과 권력이 없던 한인들은 피땀으로 일군 삶의 터전이 잿더미가 되어도 아무도 지켜주지 않았습니다. 물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풍습이 다른 이국땅에서 성실하게 살았지만, 하루아침에 재산, 건강, 생명, 그리고 삶의 보금자리를 잃은 교포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4.29 폭동이 제게 주는 교훈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 세상이 악하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양심이 무디어져서 점점 더 큰 죄악으로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도덕성과 가치관의 붕괴는 가정의 심각한 붕괴로 연결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흑인들이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인종차별의 피해자인 것처럼 한인들 역시 인종차별을 받으며 소수민족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시각으로 이웃을 대하고, 먼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 땅에 인종차별은 계속될 것입니다. 폭동 때 목숨을 잃은 고(故) 이재성 군의 어머니가 4.29 폭동 20주기를 맞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와 피부색이 다르지만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20년 전 4.29 폭동에 오늘 같은 화합이 있었다면 우리 아들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서로 화합하고 포용하는 도시를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셋째, 4.29 폭동으로 인한 고통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교포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사랑으로 섬겨주어야 합니다. 넷째, 정치, 경제, 교육, 과학, 문화, 군대 등 미 주류 사회의 모든 영역에 들어갈 다음 세대 인재들을 키워야 합니다. 성경적인 가치관으로 무장하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동시에 세상에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품고 섬길 다음 세대의 모세, 요셉, 느헤미야, 다니엘, 에스더, 드보라, 그리고 루디아를 키워내야 합니다.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은 한순간에 빼앗길 수 있는 ‘아메리칸 드림’을 쫓아 살지 말고,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킹덤 드림’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사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부요한 자입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일,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오는 일을 위해 헌신한 사람이 진실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세월이 지났다고 4.29 폭동을 잊지 맙시다. 특별히 아직도 고통 중에 있는 우리의 이웃을 잊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