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토요일 새벽 딸과 함께 워싱턴DC에서 뉴욕행 3시 30분 새벽 버스를 타고 맨해튼 줄리어드 예비학교에 다닌 지 벌써 3년이 되었다. 12살 아직 아기 얼굴을 벗지 못한 딸과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매주 뉴욕을 가는 것은 큰 부담이었지만 세계적인 교수님께 실력을 인정받아 레슨과 음악에 관한 다양한 수업, 오케스트라 연주를 할 수 있고 학교에서 장학금도 많이 받았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선물이고 감사할 뿐이다.
무엇보다 하프전공인 딸은 개인악기를 가져가지 않아도 되어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매주 뉴욕을 여행하듯 이 모든 일은 계속되고 있다. 물론 토요일 엄마와 딸의 데이트는 모녀뿐 아니라, 아빠와 아들 남자들만의 시간을 갖는 부자 서로에게도 매주 특별한 이야기와 추억을 만들고 있다. 코로나로 인한 1년의 버추얼 수업은 우리가족 모두에게 잠깐의 쉼이 되어 어려운 가운데 감사함을 찾을 수 있었고, 이번 가을학기부터 다시 새로 시작하는 것처럼 기대하는 마음으로 갈 수 있게 했다.
새벽버스는 주로 유럽의 젊은 관광객들과 뉴욕으로 관광 가는 가족들이 많이 보인다. 다양한 언어와 인종의 사람들이 새로운 곳에 가는 설렘을 가득안고 대화를 나누다가 잠이 든다. 버스가 맨해튼에 들어가는 링컨터널을 지날 쯤, 동트는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창문 밖 고층빌딩을 사진에 담으려는 사람들의 감탄과 웅성거리는 익숙한 소리에 딸과 미소를 짓는다.
모든 수업을 마친 후 우리는 다시 저녁 7시30분 버스를 타고 버지니아로 내려온다. 새벽과는 달리 밤 버스에 사람들이 많이 타지는 않는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같은 시간 버스를 이용하는 나와 딸을 아는 버스기사들도 많아져서 안부도 물으며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지난 주 토요일은 가을비가 내려 뉴욕의 밤을 촉촉이 적시며 마음까지 젖어들게 했다. 오랜만에 내리는 비는 생각보다 많이 내렸고, 미리 우산을 준비 한 우리는 괜찮았지만, 함께 버스를 기다리는 다른 승객들은 자켓 모자를 쓰거나 비를 피하려 건물 처마로 들어갔다.
버스는 늘 미리 기다리고 있다가 승객을 싣고 정확히 출발했었는데. 이상하게 비가 오는 그날은 버스가 주차장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버스회사에서 긴급으로 텍스트와 이메일이 왔다. 중간에 사고로 버스가 2시간 정도 늦게 9시30분에 출발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동시에 소식을 접한 승객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당황해했다. 빗줄기는 점점 거세져 나는 딸에게 우리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여대생에게 우산을 하나 빌려주고 우리는 같이 쓰자고 했다. 우산을 건네자 학생은 자기가 정말 사용해도 괜찮은지 여러 번 물으며 너무 고마워했다.
인도전통의상을 입은 노년의 부모님과 남매가족, 우리모녀, 네 명의 젊은 프랑스 배낭 여행객들, 중년 백인여성, 잔뜩 쇼핑을 한 쇼핑백이 비에 젖어 찢어져 안고 있는 멋쟁이 흑인 아가씨들, 다른 몇몇의 사람들 이렇게 우리는 함께 버스를 기다렸다. 새로 버스가 올 때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도가족의 아들은 비를 뚫고 달려가 매번 기사에게 워싱턴행 버스가 아닌지 확인을 했다. 의자도 없이 계속 서서 기다리는 힘들어 하시는 부모님을 위해 뛰어다니는 아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비라도 안 왔으면 기다리기가 더 수월했을 텐데,,,,,
모두들 추위와 기다림에 지쳐갈 때 버스 한 대가 들어왔다. 시간 전에 들어온 버스라 별 기대 없이 있는데, 차에서 내린 기사가 "워싱턴 버스!" 라고 크게 소리쳤다.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함께 버스에 올랐다. 사람들은 당연하다는 듯 인도가족을 제일 먼저 탈 수 있게 기다렸고 괜찮다고 했지만, 일행 중 제일 어린 학생인 딸을 배려해주며 우리에게 차에 오르라고 했다. 차례차례 젖은 옷을 털며 버스에 오르자 기사는 고생했다며 친절하게 큰 페이퍼 타올을 건네며 물기를 닦으라고 했다.
우리가 우산을 빌려준 여대생은 언제 다녀왔는지 음료수 두병과 함께 우산을 돌려주었다. 인도가족은 혹시 배고픈 사람이 있으면 스낵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말했고, 그 사이 핸드폰 베터리가 다 된 사람들은 서로서로 충전라인을 나누며 전화기를 충전했다. 히터로 따뜻한 버스안의 온도와 안도의 웃음소리들,,,,,그리고 어려움을 함께 한 이들에게 작은 것이라도 나누려고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서로 너무나 다른 각각의 나라, 각각의 인종은 그 순간 서로에게 모두 위로가 되어주었다. 물론 항상 조심해야겠지만, 최근 뉴스에 보도되는 갈등으로 인한 범죄로 인해 대중교통을 다시 이용하여 뉴욕에 다니는 것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경계하던 마음이 많이 평안해졌다. 버스가 출발하고, 실내등이 꺼지며 우리는 링컨 터널을 지나 맨해튼을 벗어나고 있었다.
아침보다 더 화려한 맨해튼의 야경은 내리는 비와 함께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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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