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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의 땀방울- 무엇을 기대할까? (28)

부제: 교회사가 가르친다!(14)-교회 교육
조진모 목사

필라델피아한인연합교회, 웨스트민스터 Ph. D, 역사신학

백년지대계 

 

교육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라는 말이 있다. ‘관자’라는 사상가들의 글을 담은 중국 고전에 기록되어있다. 곡식과 나무를 심는 계획은 각각 1년과 10년이 적당한 것이라면, 사람을 위해서는 한평생을 내다보며 장기적 계획을 세우라는 소중한 교훈이다. 곡식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란다. 곡식에 비해 성장 속도가 늦은 나무도 일단 몇 년이 지난 후부터 매년 풍성한 열매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는 태어날 때부터 사회인으로 기능하는 성인이 되기까지 매우 느리게 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생 교육을 중시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람에게 투자하면 곡식이나 나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엄청난 양과 질의 수확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육의 효과를 아는 부모들은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희생을 아끼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시기이다. 빠를수록 좋다. 신앙 교육도 마찬가지다. 어린 나이부터 신앙의 도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현재 한국교회 주일학교의 상황은 어떤가? ‘백년지대계’를 의식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며 교회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는 인재들을 육성하고 있는가? 주일학교 교육이 큰 위기를 맞았다는 것은 더 이상 숨겨진 사실이 아니다. 주일학교가 없는 교회의 수가 늘어가고 있다. 과연 다음 세대에도 교회의 존립이 가능할 것이냐는 질문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인 듯하다. 한국에서는 출산율 급감에 따라 학령인구가 줄어져 초등학교 폐교 현상이 일어나고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주일학교에 출석하는 아이들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 여기고 지켜보고 있어야 할까?  

한국교회는 초기부터 교육하는 기관이었다. 근대교육이 발흥한 역사를 살펴보면 그 중심에 복음을 들고 조선을 찾은 선교사들의 공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아이들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을 교회의 중대한 사명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단지 교회보다 학교가 먼저 세워진 이유는 조선정부가 종교적인 관심보다 서구 문화를 수용하는데 있었기 때문이다. 1882년, 한미수호조약이 체결되어 다음해에 친선사절단이 미국을 방문하였다. 그 결과 미국 선교단체가 조선 선교에 대한 관심을 갖고 적극적 자세를 취하였고, 신식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한 고종황제가 1884년에 의료사업과 교육에 관한 윤허를 내린 것이다.  

1885년 6월,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Underwood, 1859-1916)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Henry Appenzeller, 1858-1020)가 함께 인천항을 통해 입국하였다. 즉시 그들은 각각 한국 최초 근대식 중등교육기관을 설립하였다. 고종황제가 직접 교명을 지어 하사했는데, 경신학교는 ‘새로운 것을 깨우침’ 또한 배재학당은 ‘인재를 기르는 집’이란 뜻이다. 1885년 이후 선교사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전국에 신식 학교가 세워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점차 개화가 이루어졌으며 사회와 교회의 지도자격인 인재들이 다수 양성되었다. 

 

주일학교 교육

 

1898년 6월, 조선정부가 처음으로 윌리엄 스왈론(William Swallon, 1859-1954) 선교사에게 선교의 자유를 허락하였다. 13년 동안 학교 교육에 임하였던 선교사들의 성실한 모습이 얻어낸 결과였다. 그 후로 선교사들은 주일학교 교육을 통한 어린이 육성에 관심을 기울이고 사역에 임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이 한국교회에 전달한 미국교회의 주일학교 사역의 기초를 1780년경에 시작된 영국교회의 주일학교 운동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영국은 농업에서 산업사회로 전환되면서 큰 변화와 혼동을 경험하고 있었다. 이때 아이들이 사회에서 무시되고 있었고, 심지어 장시간 아동노동을 시키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중상류계층에만 관심을 보이고 있었는데, 영국 글로스터에서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 1736-1811)라는 평신도가 주일마다 사회로부터 무시 받던 빈곤층 아이들을 위한 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하였다. 문맹을 깨우칠 수 있는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쳤을 뿐 아니라, 기독교 교리 교육과 함께 성경에 근거한 도덕 예절을 실천하게 하였다. 

영국에서 시작된 주일학교 운동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교회마다 주일학교가 활성화되어 시작된 후 4년 만에 전국 어린이 가운데 25% 정도가 교회 주일학교에 출석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또한 사회적으로 교육이란 소수 특권층들의 전유물이 아니며 모든 계층의 자녀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 혜택이란 의식이 생겨났다. 결국 영국의 주일학교 운동은 무상 공립학교 교육의 기초가 된 것이다. 

미국에서 주일학교가 시작된 것은 1785년이었다. 영국 주일학교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을 받아 공립학교가 세워지기 전까지 빈민자녀와 노예들에게 읽기와 쓰기, 그리고 성경에 기초한 신앙교육과 인성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미국교회도 1825년부터 주일학교를 교회의 중심 사역으로 받아들였다. 1830년에 주일학교 연합회가 조직되었고, 1865년에는 교사들을 위한 잡지가 발행되었다. 1872년에는 모든 교회내의 주일학교가 유사한 교재를 가르치게 하려는 의도로 통일공과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초창기 한국에서 교육을 담당했던 미국교회 출신 선교사들은 교회가 어린이의 신앙교육과 사회교육에 대한 책임을 지녔음을 익히 알고 있었다. 

 

어린이의 소중함 

 

매년 5월 5일 어린이날을 법정 공휴일로 지키고 있다. 천도교 신자였던 방정환에 의해 어린이날이 제정된 해가 1923년으로서, 늙은이와 젊은이의 구분만 있었던 그 당시 어린이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없던 사회 모습을 반증하여준다. 사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철저한 어른 중심의 사회를 이뤄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조선을 찾은 미국 선교사들이 오래 전부터 복음의 관점에서 어린이의 소중함을 계몽하고 선도하였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주일학교가 시작된 것은 1888년도였다. 최초 외국인 여성 선교사 이화학당의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Mary Scranton, 1932-1909)은 자신의 집에서 12명의 여학생을 대상으로 주일학교 사역을 시작하였다. 1890년에 채택된 네비우스 선교정책 가운데 주일학교 사역을 매우 중요한 실천적 사역으로 받아들인 결과 빠른 속도로 전국에 퍼지게 되었다. 

1905년에 미국에서 사용되던 통일공과를 번역하여 편찬하기 위해 선교연합공의회 안에 주일학교위원회를 설치하였고, 1913년에는 세계 주일학교대회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경복궁에서 대규모 주일학교대회를 열었다. 그 결과, 주일학교의 수가 급증하고 크게 부흥하였다. 한국 주일학교 역시 영국과 미국에서와 유사하게 성경공부를 통한 신앙교육과 함께 교육의 기회를 받지 못한 아이들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는 사역이 포함되었다.  

선교사들이 세운 학교 이외에 1894년부터 조선정부의 관제 개혁을 통해 소학교와 사범학교가 세워졌으며, 민간인계 사립학교는 이보다 더 활발하게 설립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근대 사학의 교육을 통해 민족의식이 고취되고 애국사상이 함양되었으며, 국권회복에 이바지한 민족운동 지도자들을 배출되었다. 기독교 교육 역시 구국운동에 큰 몫을 차지하였는데, 그 당시 기독교인이 전체 인구에 불과 1%밖에 되지 않던 상황 속에서 1919년 독립운동에 중심 역할을 담당할 수 있었다.  

 

디지털 시대 주일학교 교육도 첨단 교육시설과 교육 방법 확보

교회는 복음 통한 구원이 중심된 신앙 가치를 우선순위에 둬야

 

가치의 회복 

 

1945년 8월, 교회를 탄압하고 순교의 피를 흘리게 했던 일제가 항복을 선언했다. 세상이 달라졌다. 교회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복음전파에 더욱 힘을 쏟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주일학교 교육상황은 이전보다 훨씬 못하게 되었다. 전에는 아이들을 향한 기대와 정성으로 임하였지만, 교회의 중심으로부터 부수적인 사역으로 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을 중점사역으로 출발한 한국 교회였지만, 상황이 변하여 전도를 통해 교인의 수를 늘리는 것이 최대 관심사가 된 것이다.  

1960년대 이후 각 교회 주일학교는 비전공 신학생 신분의 교육전도사가 맡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에 갓 입학한 젊은이로부터 졸업을 위한 실습 필수과목을 이수하려는 나이가 지긋한 신학대학원생까지 매우 다양했다. 교사훈련이나 교육제도 또는 교수법 등에 대해서는 그냥 알아서 하라는 분위기였기에, 교육전도사가 새롭게 부임할 때마다 학생들과 교사들은 혼동을 경험하기가 일쑤였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현재 근본적 상황이 달라졌다.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1995년 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반복하면서 주일학교 학생들이 매우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늦게나마 손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은 교회마다 교육에 우선권을 두고 있다. 교육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고 교육을 위한 재정에 과감하게 투자하고 있다. 학부모회를 통해 교회와 가정에서의 교육적 협력을 도모하고, 자녀교육에 관한 중요 사항을 서로 나누는 등 여러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러나 왜 이런 변화가 찾아온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된다. 자녀교육을 잘 시킨다고 소문이 난 교회로 젊은 부모들이 몰리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교회마다 경쟁적으로 주일학교 교육에 더욱 열을 올리는 모습을 안타까운 모습으로 바라보게 된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주일학교 교육의 가치를 회복하는 일이다. 어린이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주일학교 교육의 기반 구조에 대한 개조가 급선무인 것이다. 교회가 변해야 먼저 변해야 결국 아이들이 변할 수 있다는 교육 전문가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어린이들의 탈 교회현상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교회는 팽배해지는 개인주의와 거친 세속문화와 영적 전쟁을 선포하고 치열하게 싸워야 한다. 아이들이 지닌 진정한 고민이 무엇이며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근본적 대안을 찾아야 한다. 또한 디지털 시대를 맞아 첨단의 교육시설과 교육방법을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회가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는가를 냉철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복음을 통한 구원이 중심된 신앙의 가치가 아니라면, 교회가 지상에 존립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새롭게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성품은 결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당장의 효과를 보려하는 교육방식은 실망을 가져다줄 것이다. 하지만 교육을 통해 훈련된 사람을 붙잡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따라 말씀의 능력을 믿고 인내하며 가르치는 사명에 충실해야 한다. 

covenantcho@yahoo.com

02.0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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