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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의 경건생활 (The Piety of John Calvin) I. 칼빈이 생각했던 경건

이윤석 목사 (NY 부르클린제일교회)
이윤석 목사

5)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하여”라는 논문을 통한 칼빈의 계속되는 순례 여정

 

(2) 바울에 대한 칼빈의 집중적인 연구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하여”는 바울에 대한 칼빈의 집중적인 연구 결과가 반영되어 있다. 이 논문은 단순히 바울의 사상에만 열중한 논문이 아니다. 칼빈의 목표는 바울의 사역 방식을 교회에 끌어들이는 데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의 삶을 올바르게 이끌고 지도할 어떤 질서를 보여주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칼빈 자신이 이러한 의도를 밝히고 있다. 칼빈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요구하시는 거룩함. 즉 심령 깊은 곳의 거룩함을 이루라고 독자들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완전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나아가는 성장과정(일생에 걸친)을 기술하기 시작한다. 여기에서 칼빈은, 로마 가톨릭이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이원론적인 개념의 생활관과 재세례파의 가르침에서(옳든 그르든) 추론해 낸 '즉각적인 완전성의 획득'이라는 개념 사이에서 의식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에 선다.

 

(3) ‘자아 부정’과 ‘십자가를 짊어짐’과 현재 삶의 의미와 목적

칼빈은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신자의 심령에서 내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을 '자아의 부정'으로,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외적인 삶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을 ‘십자가를 젊어짐'이라고 묘사한다. 9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칼빈은 세계의 허망함에 대해 성찰하는 가운데, 중세 수도사 같은 견해를 피력한다. 그러나 그는 10장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중세적인 견해를 완전히 벗어난다. 그 비밀이 무엇일까? 그 비밀은 현재 우리가 사는 삶에 의미와 목적을 부여해 주는 다가올 삶에 대한 소망에 있다.

이 부분을 읽는 독자는 양극 사이에 형성된 어떤 자석과 같이 끌어당기는 느낌을 갖게 된다. 칼빈의 심오한 종교적 통찰력은 논쟁 가운데 싹튼 것이다. 그는 양극단 사이에서 중간적이고 성경적인 입장을 찾아내려고 계속적으로 노력했다. 그것은 로마 가톨릭과 재세례파의 사이에 중간적이고 성경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4) 칼빈의 사상 연구자의 이해

칼빈의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은 칼빈 사상의 이론적인 구조만을 연구해서는 안 되며, 어느 한 부분만을 발췌해서도 안되고, 그의 사상을 일반화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그의 글을 원래의 전체성 가운데서, 그리고 그 글이 나오게 된 역사적, 성경적, 신학적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같은 이치로,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한 우리 자신의 견해와 실천도 우리 시대의 신앙이 가지고 있는 심각한 이율배반적 성격에 대한 숙고에서부터 나와야 한다. 그러나 칼빈이 21세기의 전반부를 사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인의 삶에 관하여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대단히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이 글 속에서 칼빈은 자연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청지기 된 원리를 분명하게 말함으로, 우리가 현재 처해있는 생태학적 위기에 대해서도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최근에 이루어진 거대한 기술적 진보가 이룩되기도 이전, 우주탐험의 시대가 개막되기 훨씬 이전, 지나친 자원 착취가 행해지기 이전, 칼빈은 지구라는 행성이 소위 “폐쇄된 환경구조”임을 알고 있었다. 

 

(5) 칼빈의 인간 창조 세계 이해

다음에 기록된 인용구 등을 통해 칼빈은 인간이 창조 세계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모세는 지구를 개발하라는 조건으로 인간에게 지구가 제공되었다고 덧붙인다. 여기에서, 땅은 현재의 상태로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며 인간은 땅을 경작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 같은 사실로부터 인간은 일을 하기 위해서 창조된 것이지, 무위와 나태 가운데 누워 있도록 창조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 노동은 참으로 즐거운 노동이며, 기쁨으로 충만한 노동이며, 그것은 온갖 걱정과 싫증은커녕 즐거움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땅을 경작해야 한다고 명령하셨으므로, 인간 자신의 성품에 따라 게으른 휴식을 저주하셨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먹고 마시고 자는 일로 인생을 허비하는 것은 자연의 질서를 위배하는 일이다. 모세는 동산을 관리하는 책임이 아담에게 위탁되었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에 맡겨주신 일들이 있다고 덧붙인다. 이 일은 남은 땅을 잘 관리하면서, 검약하고 검소하게 선용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땅을 소유한 사람, 그리하여 그 땅에서 나는 열매를 매년 취하는 사람은 자신의 게으름으로 땅이 망쳐지지 않도록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그 땅을 자신이 물려받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또는 더 잘 경작된 모습으로 후손에게 넘겨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땅의 열매로 먹고 살되, 사치스럽게 그것을 낭비하거나 게으름으로 인해서 열매를 망치거나 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누리도록 허락하신 선한 것들을 존중하는 마음을 품어,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충만히 이루어드리고 더욱더 부지런히 일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나의 소유물을 관리해야 할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사실을 모두 다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누구도 방탕하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보존(선용)하라고 하신 것들을 남용함으로써 망쳐버리는(더럽히는) 일도 없을 것이다.”

 

6) 그리스도인의 경건의 삶의 탐구에 도움을 줄 일반적 원리들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점진적으로 성장해가는 것이라고 믿었다. 위의 인용문을 볼 때, 칼빈 자신도 1564년에 숨을 거둘 때까지 그리스도인의 온전한 삶을 향하여 성장의 과정을 밟아나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경건(pietas)과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에 대한 칼빈의 가르침을 멋대로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이제까지 살펴본 칼빈의 경험을 보면서, 또한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복음의 가르침에 상응하는 삶을 탐구하는 데 도움을 줄 몇 가지 일반적인 원리들을 얻을 수 있다.

(1) 한 사람이 어떤 시대를 살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어떤 중요한 경험을 했는지를 모르고서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제자도에 대한 나름의 견해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다. 우리가 제자도에 대한 어떤 특별한 기독교적 관점을 이해하려면 칼빈 자신의 시대와 그의 독특한 그리스도 체험에 근거해야 한다.

(2) 우리가 고전적인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일상의 삶에 대해 가지고 있는 숨겨진 전제들을 파악해야 하며, 최소한이나마 그것들을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가) 인간은 자기 충족적인 존재이며 과학적,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는 신화, (나) 하나님을 일상의 삶에서 중요한 존재로 취급하지 않고, 그림자와 같은 개념으로 파악하려는 자세, (다) 성경을 다른 책들과 똑같은 인간의 책으로 이해하려는 관점, (라) 사후의 내세의 삶을 부정하고 인간의 모든 관심과 역량을 현재의 삶에만 기울이는 태도, (마) 상품의 생산에 대한 강조와 인간을 소비하는 동물로 보는 인간관, (바) 인간을 욕구의 충족을 기대하는 하나의 동물로 보는 관점 등이 전제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배제해야만 한다.

(3) 칼빈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잠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칼빈이 설정한 기본 전제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 전제들이란 (가) 인간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존하는 존재이며, (나) 우리에게 주어진 자연은 선용하고 누리도록 주어진 것이지만, 중용과 책임을 전제하며, (다) 하나님은 섭리에 따라 우리를 보호해주시며, (라) 철학자들의 글과 성경 사이에는 심각한 차이가 있으며, (마) 내세는 현재 삶의 목표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에 소망을 준다는 것이며, (바) 모든 재물(선한 것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 가운데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며, (사)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재물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사용했느냐의 여부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younsuklee@hotmail.com

 

09.07.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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