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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챠드 백스터(Richard Baxter)의 [회심, A Call to the Unconverted]

이윤석 목사

[들어가며]

 

회심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내가 회심했다’는 말은 구원과 관계되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회심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긍정의 대답을 한다는 것은 구원의 확신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회심했다는 것은 나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눅 10:20)을 가장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회심이란 위대한 사건이 한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자신이 경험한 그 회심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그 필요성과 중요성과 긴급성을 전함으로 자신처럼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는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청교도 시대의 목회자들은 자신이 목양하는 교회 성도들의 회심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습관적이며 형식적으로 교회생활을 하는 교인들을 향해 지성과 열정과 모든 힘을 다하여 회심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설교했다. 이 책은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하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는데 귀하게 사용된 책이다. 청교도 시대의 다작가이며 목회적이고 실제적인 백스터의 저술로서 후대에 가장 많이 알려지고 읽혀진 책이다. 

청교도들은 회심의 문제를 피상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회심에 관한 모든 가능성과 모든 주제들을 하나님 중심적인 관점을 견지하며 그 뿌리까지 파고 들어가 철저하게 다루었다.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부패를 믿었던 청교도들은 회심한 이후의 복을 제시하기 전에 인간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를 철저히 다룸으로서, 죄를 인식하는 깊이만큼 구원의 깊이를 안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또한 인간이 회심해야 할 중요성에 대해서도 단순히 예수 믿고 난 다음 이 세상에서 받는 현세적인 복의 내용보다는 영원한 천국과 지옥의 관점에서 문제를 다룬다. 이 책은 회심하지 않은 명목상의 교인들에게 회심의 진리를 분명하게 전달하여 회심하도록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회를 제공해 줄 것이다. 또한 회심한 사람에게는 자신이 회심하기 전의 상태가 얼마나 비참했으며, 회심한 이후의 지금이 얼마나 복된 것인가를 충분히 깨닫고 감격과 감사가 넘치게 될 것이다. 또한 사역자들에게는 자신이 목양하는 교회의 교인들이 모두 회심하여 구원받은 사람들이라고 가정하고 설교하거나 목회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지를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며 이에 저자가 가진 구령의 열정을 동일하게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I. 리챠드 백스터(Richard Baxter, 1615-1691) 

 

1) 백스터의 회심(A Call to the Unconverted)

 

영국의 대표적인 청교도 목회자였던 백스터가 15세가 될 무렵, 그 당시 시대 상황은 한 마디로 '부패' 그 자체였다. 성직자의 도덕적, 영적 타락과 교인들의 세속화로 인하여 교회 전반에 총체적인 부패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스터는 1630년 15세 때에 아버지의 영향으로 성경을 읽고 회심하게 되었다. 

 

2) 그의 목회

 

백스터는 국교회에서 안수를 받고 1641년 4월 26세 때부터 1660년 4월 45세까지 키더민스트에서 12년 9개월간 목회를 하였는데, 그 기간 동안의 사역이 100여 년이 지난 뒤까지 모범적인 목회의 영향력을 미쳤다. 백스터는 국내전도 뿐만 아니라 해외선교에도 열정적 관심이 있었다. 복음전파선교회를 설립하는데 주역을 맡았고, 인디언 선교사 존 엘리엇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조지 휫필드는 백스터의 가르침과 사역에 찬사를 보냈다. 1641년부터 키더민스터의 목회는 그 지역 전체가 변화될 정도로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다. 

 

3) 그의 활동

 

청교도 혁명 때는 의회파에 속하여 크롬웰 군의 군목으로서 일했다. 왕정복고 후 찰스 2세가 궁정 사제로 선임하고 국교회 주교직을 제안했으나 이를 거절하였다. 1662년 통일령의 공포와 함께 국교회를 떠나 박해를 받으면서 비국교도 목사로서 설교를 계속하였는데 1685년 국교회를 중상했다는 이유로 18개월간 투옥되기도 하였다. 신앙심 깊고 용기 있으며 재능이 뛰어난 이 청교도를 한 마디로 잘 표현한 것은 키더민스터의 교인들과 비국교도들이 세운 그의 기념비에서 찾아볼 수 있다. “1641년부터 60년까지 이곳은 리처드 백스터의 일터였다. 이제 여기는 그의 기독교적 지식과 목회적인 충실로 인해서 그와 동등하게 유명하게 되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분열의 시대에 그는 일치와 이해를 옹호하였고 영원한 평안의 길을 제시하였다” 금세기 최후의 청교도라고 불리는 제임스 패커는 리처드 백스터를 가리켜 청교도의 실제적이고 경건한 가르침을 가장 잘 전한 목회자 전도자 저술가라고 평가했다. 그는 사도행전 20장 28절을 목회 좌우명으로 삼았으며, 1691년 12월 8일 그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150편의 논문을 썼고 미발표된 몇 백 편의 서신과 글을 남겼다

 

4) 그의 신학적인 혼합

백스터의 작품들은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 특이한 혼합을 이루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의 작정, 속죄, 칭의의 교리에 있어서 개혁주의적 견해를 가졌다고 볼 수 없는 몇몇 청교도 중의 한 사람이었다. 비록 그가 대체적으로는 그의 신학을 개혁주의 라인을 따라 형성하기는 했지만 매우 자주 일미니우스(Arminius)적 사고에 기울어지고도 했다. 그는 아미랄두스주의(Amyraldism)자들의 영향을 깊이 받아서 가정적 일반 속죄론(Post-redemptionism, Hypothtical Universalism)을 포함하는 그들의 사상에 자신의 생각을 조합시켰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 가정적으로 돌아가셨지만 그의 죽음을 믿는 자들에게만 실제적 유익을 준다는 가르침이었다. 칭의의 교리에 대한 백스터의 접근법은 신 율법주의라고 불린다. 그는 하나님이 옛 율법을 깨뜨린 것을 회개하는 자들에게 용서를 제공하면서 새로운 법을 주신다고 말했다. 반드시 순종해야 하는 이 새로운 율법은 믿음과 회개인데 이는 하나님의 보존하시는 은혜에 의해 유지되어 신자 자신의 개인적이고 구원을 얻는 의로움이 된다는 것이다. 백스터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교리가 율법폐기주의로 가는 것을 우려하여 신율법주의를 주장하였는데, 그의 신율주의(Covenantal Noimism)는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여 최종적으로 칭의 된다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가 율법의 교훈을 폐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행히 이 잘못된 교리들은 그가 신학을 가르치기 위해서라기보다 성화를 촉구하기 위해 주로 작성한 경건 문헌들에는 표면적으로 많이 드러나지 않는다.

younsuklee@hotmail.com

12.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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