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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음과 혼냄

김성국 목사

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지도자로서 가장 힘드신 것이 무엇인가? 필자에게는 결정(決定)이다. 결정하는 일만 없다면 리더는 해 볼만(?) 하다. 무엇인가 결단해야 하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 그 결정의 결과가 내게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서 더더욱 그렇다. 지도자의 고독한 결단의 시간은 누구도 갖지 못할 영광을 누리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엄청난 결과와 철저한 책임을 기다려야 하는 힘든 시간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지도자의 결정은 그가 섬기는 공동체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곡점(變曲點)이 된다. 그러기에 무엇인가의 결정에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시간을 ‘기도해 보고 결정 하겠습니다’라고 격조 높게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충분한 기도 시간을 갖지 못하고 순간적인 판단과 행동을 해야 할 때도 종종 있다. 

 

얼마 전 피택자 훈련하는 가운데 피택자들이 성경 읽는 것을 공개적으로 체크하는 시간이 있었다. 피택자 중에 연륜이나 경륜이 가장 앞서 있는 분이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하였다고 고백하였다. 순간적으로 그를 혼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나는 그 순간에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따듯하게 그를 품어 주면서 다음에는 잘 해오시라고 말 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사실 그는 뜨거운 여름에 더 뜨거운 비즈니스 현장에서 매일 녹초가 되도록 일하는 분이시다. 그렇다면 그때 그를 품어주는 것이 더 필요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를 혼내주는 것을 선택하였다. 필자의 다그치는 혼냄에 당사자도 놀랬고 그 자리에 있던 다른 피택자들도 적잖이 경직 되었다. ‘아차차!’

 

필자보다 오랫동안 이민교회를 섬겨 오신 분들이 더 많으시지만, 필자도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섬겨왔다. 그럼에도 이민자의 애환(哀歡)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는 것 같은 미안함에 ‘아차차!’라는 탄식이 흘러나온 것이다. 이민자란 누구인가. 그 언제가 많은 사람의 만류를 뿌리치고 물 건너 산 건너 이역만리(異域萬里) 낯선 땅에 와서, 전혀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 불안정한 신분과 생업,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스스로의 앞날과 자녀 교육의 고통을 눈물겹게 감내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아닌가. 그래도 교회를 유일한 피난처로 삼고 목회자를 위로자로 여기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그들의 어려움을 누구보다 십분(十分) 이해하고, 헤아리고, 공감해야 할 자들이 이민교회 지도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것을 무조건 품어서야 되겠는가. 마태복음 16장에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를 향해 칭찬하시는 모습도 있고 혼내시는 모습도 있지 않으신가.

 

돌이켜 보니 지금까지 수많은 지도자를 만났다. 그들 중에는 무관심 했던 분, 격려해 주신 분, 비교했던 분, 용서해 주신 분, 품어 주신 분, 혼내 주신 분 등 많은 지도자를 만났었다. 가장 영향력 있었던 분들은 필자를 품고 또 품어 주었던 분들이고,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분들은 나를 가장 많이 혼내 주신 분들이다. 나를 품어 주신 분들, 내게 혼내셨던 분들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초점 없이 건성으로 살았을 것 같다. 필자가 혼내 주었던 분과 만나 이야기했다. 그분이 그랬다. ‘그날의 상황은 제가 원인 제공자였기에 죄송합니다.’ 나는 그랬다. ‘힘드신 여름을 보내고 있으신데 좀 더 따듯하게 말해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필자가 지도자로 있는 한 품음과 혼냄의 상황은 또 올 것이다. ‘주여, 그러할 때, 선택을 잘할 지혜를 주옵소서'

 

07.29.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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