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퀸즈장로교회 담임
기다림은 역설이다. 설렘과 괴로움을 같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가져다줄 풍성한 결과에 설렘이 있는가 하면 기다림이 현실이 되기까지 초조함과 불안감에 괴롭다. 그러니 기다림에 지친다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우리 마음에 너무 잘 와닿는 것이다. ‘기다리게 해놓고/ 오지 않는 사람아/ 이 시간은 너를 위하여/ 기다린 것인데/ 기다리게 해놓고/ 오지 않는 사람아/ 나는 기다림에 지쳐서/ 이제 그만 가노라’ 기다리다 지쳐서 이제 그만 기다림을 포기하겠다니 얼마나 애잔한 노래인가. 그러나 기다림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더더욱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지 않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런 조급함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도전이요, 하나님의 섭리를 자기의 시간표에 끼워 넣으려는 교만이다. 이런 교만을 보이며 기다림을 포기했던 사울 왕은 결국 망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세계적으로 수없이 공연된 작품이다. 그는 원래 이 희곡을 불어로 썼고 그 자신이 또 영어로 쓰기도 했다. 그 영어작품의 제목이 ‘Waiting for Godot’이다. 여기서 ‘Godot’라는 단어는 ‘God’을 의미한다. 이 작품에는 몇몇의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 가운데 주인공 격인 두 남자가 절망 가운데 자기를 구원해 줄 고도를 기다린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고도, 즉 하나님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것이 희곡의 전체 줄거리이다. 이 작품은 인간이 기다릴 하나님의 구원은 없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가운데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는 바벨론 강가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래가 있다. 그들의 기다림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70년 만에 이루어졌다.
예수님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2) 하시면서 우리에게 기다리라고 하셨다. 기다림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기다림을 쉽게 만든 사람이 있다. 야곱이다. 야곱은 7년의 기다림을 몇 날같이 아주 짧게 여겼다. 무슨 비결이 있었던가. 확실한 방법이 있었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창 29:20) 야곱은 라헬을 열렬히 사랑했다. 그러기에 그는 칠 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어도 쉽게 참을 수 있었다. 야곱에게는 사랑을 포기하는 것보다 기다리는 것이 훨씬 쉬었다. 그러고 보니 야곱은 우리의 선입관에 있는 치사한 남자가 아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7년을 그리고 엑스트라 7년까지 아낌없이 투자했던 멋진 상남자(上男子)였다. 바울도 사랑 장(章)에서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새해에 무엇을 기다리시는가. 변화(變化)인가, 번성(繁盛)인가. 성숙(成熟)인가, 성취(成就)인가. 그님인가 주님인가. 천천히 오는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으려면, 먼발치 오는 기다림에 지치지 않으려면, 기다리는 대상을 열렬히 사랑하자. 그리고 그것에 시간을 과감히 투자하자. 어떤 세월도 짧게, 어떤 어려움도 쉽게 여기며 살 수 있다. 야곱처럼. 바울처럼. 기다림은 역설이 아니다. 설렘이며 또 기쁨이기 때문이다.
1.14.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