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퍼시픽대학교 교수)
딸 부잣집의 막내인 나에게는 다섯 언니가 있다. 그중에서도 바로 위에 언니는 두 살 터울이어서 거의 친구처럼 컸다. 어린 시절 같이 벽돌을 빻아 고춧가루라고 놀던 소꼽 장난부터 시작해서 엄마가 시장을 가실 때면 함께 따라 다니던 것 등 언니와는 많은 추억이 있다. 손끝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고 살 것 같던 언니가 믿음 좋은 집사이던 형부와 결혼을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형부는 갑자기 신학대학원에 가셨다. 그리고 굳이 시골 교회 담임 목사로 가셨다. 하나님 보시기에는 너무 귀한 사역자이겠지만 아내에게는 고생길을 걷게 한 형부에게 언니는 일상의 잔소리로 마음을 푸는 것 같았다. 그래도 명랑하고 리더십 있는 언니는 사람이 없는 시골 교회 성가대 지휘도 하고 치매로 깜빡하는 할머니들 집을 찾아가 약도 챙겨 드리며 사모 역할을 잘 감당했다. 함께 목회자 사모의 길을 가던 내가 젊은 나이에 혼자 된 것이 안쓰러웠는지 여유가 없는 삶에도 불구하고 언니는 나에게 늘 무엇 하나라도 나누어 주고 싶어 했다. 젊은 사람들에게 목회지를 물려 줘야 한다며 형부는 65살에 평생 섬긴 교회를 은퇴했다. 서울에 있는 다른 언니들 가까이 이사를 하고 두 아들도 결혼시키고 행복해 보이던 언니가 몸이 조금 안 좋다고 하더니 백만명에 서너명이 걸린다는 희귀병에 걸렸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수술이라고 생각했다가 들은 뜻밖의 병명과 수술 결과에 가족 모두가 당황하였다. 멀리 떨어져서 카톡으로만 소식을 듣고 있자니 답답해서 학교와 교회 사역을 줌으로 돌리고 언니를 보러 한국에 나왔다. 그러잖아도 작은 몸이 수술 후 더 작아진 언니를 보며 “하나님, 이 일은 또 무엇인지요?”라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을 방문하면 수많은 사람이 환자복을 입고 복도를 지나다닌다. 웬 아픈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지 모르겠다. 코비드 때문에 아직도 병실로 방문을 할 수는 없고 그나마 출입이 가능한 환자들은 방문객들을 만나러 병실 밖으로 잠깐 나와서 얼굴을 봐야 하는 상황이다. 다른 언니들 모두 아픈 동생을 위해서 매일 음식을 준비하고 병원으로 나르며 애를 쓰지만, 언니는 때로 마음이 약해진 모습을 보인다. 수술 후 온전한 회복이 어려운 상황이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염려, 근심 때문에 언니의 마음은 많이 복잡한 것 같다. 연약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은혜만을 바라보는 언니를 보며 내 마음도 힘을 잃고 흔들리려 해서 하나님을 향해 초점을 맞추느라 애쓰지만,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생각한다. 언니에게 기도만큼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말, 그리고 시간과 정성을 쏟은 돌봄일 것이다. “우리 크리스천들은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니까 살려고 애쓰지 말고 주님 뜻에 다 맡겨야 합니다.” 이렇게 교리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아무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말은 아무 도움이 안 된다. 아니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상하게 한다. 물론 좋은 의도로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신앙적으로 위로한다고 하는 말이겠지만 곁에서 듣는 나도 화가 나려고 하는 배려가 부족한 말이다.
헨리 나우웬은 차별화를 강조하는 현대 사회에서 다른 사람보다 무언가 뛰어나야 한다는 경쟁의식 속에 빠진 우리에게 인간됨의 공동 연대의식은 우리가 지닌 연약함에 있다고 진지한 목소리로 말한다. 인간은 연약함을 통해 연대 의식을 갖게 되는 것이며 우리가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볼 뿐 아니라 나의 연약함을 볼 때 하나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 수 있다고 깨우친다. 연약함의 한 가운데서 우리는 하나님 안의 형제, 자매임을 고백하게 되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쉽게 깨어질 질그릇 같은 육신을 입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깨닫을 때 그 연약함을 긍휼히 여기며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며 서로의 손을 잡아주어야 한다. 그다지 소망할 것이 없는 것 같은 때, 마음이 무너져내려 한없이 슬플 때 누군가가 함께 함이 가장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주여, 연약함의 한 가운데서 어찌할 바 모르고 주님만 바라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lpyun@apu.edu
03.18.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