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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심장을 지닌 선량(善良)들

인간사회에서는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항상 힘겹게 사는 자들이 있어왔다. 저들 중에는 예수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살 소망이 없는 자들이 많았다. 몹쓸 질병에 걸려 고통 속에 있는 자, 사업에 실패하여 자살을 생각하고 있는 자, 귀신들려 옷도 입지 않은 채 주위를 배회하는 자, 가정파괴로 인하여 가슴 속에 응어리고 품고 사는 자, 마약, 알코올, 도박 등에 중독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자, 나이 들어 자녀들에게까지 버림받은 채 연명하고 있는 자 등 우리 주변에는 마지못해 사는 자들이 참으로 많다. 

특별히 문제가 없어 보이는 일반인들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심령에 평화가 없다. 인간의 번뇌와 고통은 물질문명의 발달과 별로 상관이 없다. 문제는 예수의 피로 속량 받지 못한 저들의 불행이 개인으로 끝나지 않고 가족과 사회로 번진다는 것이다. 누가 이 가련한 사람들을 보듬어야 하는가? 관제적인 도움은 한계적일 수밖에 없다. 진정 예수의 심장을 장착하고 그 박동소리에 맞춰 행동하는 자들만이 유리방황하는 영혼들을 건질 수 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담을 헐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1. 예수께서 바라본 사역적 안목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눅4:18). 

여기 말씀처럼 주님께서는 세도가나 문벌 좋은 자나 가진 자들보다 세상에서 버려진 무지렁이 같은 민초들을 중점적으로 도우셨다. 죽은 나사로, 베데스다 연못에 있는 38년 된 병자, 사마리아 여인, 귀신들린 자, 먹을 것이 없어 배고파하는 5천명의 무리 등 착하고 건강한 99마리 양보다 잃은 양 한 마리에게 눈길을 주셨다. 왜 그리하셨을까? 

주님은 저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마9:36) 배회하며 사망의 문턱에 서 있는 것을 보셨다. 저들은 이 세상에서 기댈 언덕이 없었으며 누구보다 심령이 갈급하고 메시아를 필요로 하는 자들이었다. 이처럼 주님은 사역적 안목을 철저히 위를 향한 것이 아니라 아래로 향하셨다. 주님은 이 사역을 위해 아담한 센터를 짓고 사람들을 불러 모으지 않았다. 산과 들판, 바닷가 등을 가리지 앉고 양떼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 복음을 선포(Preaching)하셨고 교육(Teaching)하며 치유(Healing)사역을 하셨다.

 

주님은 그 사역방향을 심령이 갈한 사람들 위주로 하셨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사모하며 사랑했다.

사역은 예수의 심장 박동소리에 맞춰 중심을 쏟을 때 열매가 있다.

 

2. 숭고한 의사상을 대표하는 허준

   

https://ko.wikipedia.org/wiki에 따르면 동의보감(東醫寶鑑)은 “허준(1539-1615)이 선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한국의 의학서적(한의학)을 하나로 모은 백과사전으로서, 1596년(선조 29)부터 편찬하여 1610년(광해 2)에 완성되었다. 이 책은 대한민국 국보 319호와 319-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9년 유네스코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이로서 허준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 “동의보감”도 나왔다. 해당 책은 드라마작가인 이은성이 썼다. 발간 당시 대 히트를 기록했고, 이후 TV드라마 “허준”으로 만들어져 절찬리에 방영되었다. 

이 소설에는 의사에 대한 작가의 이상향이 드러나 있다. 그것은 주인공 허준이 과거시험을 보러가던 도중 환자들을 돌보다가 그 시험을 놓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히포크라테스(Hippocratic Oath) 선서문과 맥을 같이 한다. 의사로서 출세보다 환자를 살리는 일을 우선시 한 이 행위는 독자들과 시청자들에게 큰 감동을 안겨다주었다. 왜 그럴까? 

그만큼 숭고한 일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비록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지만 그 행위는 예수의 심장을 지닌 사람과 다를 바 없다. 이 시대에 허준 같은 심성을 지닌 의사들은 몇이나 될까?

 

3. 예수의 심장을 지닌 자의 사례

   

1990년대 “후맘”은 A국의 한 시골 마을에서 약250명 된 교회를 섬기고 있었다. 이렇게 된 사연은 남편이 핍박을 이기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떠나 버렸기 때문이었다. 가방 끈이 짧은 사모는 설교하다 말이 막히면 그냥 울어버렸다. 교인 중에 누가 아프거나 시험에 들면 금식하기 일쑤였고 대부분 밤을 교회에서 철야하며 지새웠다. 가난한 시골교회인지라 건축이 필요했다. 

한국의 어느 대형교회에서 예배당을 지어주겠다고 했다. 단 조건은 자기 교회의 이름으로 간판을 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후맘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40일 금식기도를 선포했다. 우리는  건축을 다른 이의  돈으로 하지 않고 기도로 짓겠다고 한 것이다. 그들은 연장을 가지고 나와 손수 예배당을 완공했다.  

한 번은 교인들이 사모의 두 아들 대학등록비를 모아 가져왔다. 후맘은 화를 내며 “비록 내가 과부라 할지라도 나보다 어려운 이웃들이 많은 데 어찌 내 아들만 챙길 수 있겠나?”라며  받지 아니했다. 결국 그녀는 과로한 탓에 병을 얻게 되었고 시골 병원에서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후맘은 자기 안위를 전혀 생각지 않고 양떼들을 살폈던 그리스도의 심장을 지닌 여장부였다. 우리 속담에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란 말이 있다. 다행히도 그 두 아들은 부모의 소원대로 학업을 마치고 목회자가 되어 크게 쓰임을 받고 있다.

 

4. 본질에 충실해야 할 사역

   

오늘날 목회와 선교의 방향은 어떠한가? 우리의 롤 모델인 예수를 따르고 있는가? 우리는 은연중에 주님의 안목보다는 사람의 평가를 의식하고 있다. 그것은 부흥이란 명목아래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 많은 잃은 양보다 착하고 신앙 좋고 권세 있는 99마리 양들 위주로 사역을 안배해야 한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화려하게 !” 이러한 패러다임으로 나아가다 보면 갈 바를 알지 못하는 불쌍한 영혼들이 보일 리가 없다. 아니 그들이 사역 현장에 오면 오히려 부담스럽다. 

우리 사역자들은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나의 사역인가 아니면 주님의 사역인가? 만일 후자라면 우리는 세상의 사각지대에서 눈물 흘리며 고통 받고 있는 자들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예수의 심장으로 저들을 감싸 안으며 주님의 말씀으로 저들 심령을 쪼개야 한다. 결코 안온한 터전에서 선비처럼 아니 변사들처럼 번드르르한 말로는 영혼들의 내면을 두드릴 수 없다.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죽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자기들만의 게토(Ghetto)를 과감히 허물고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뭇 심령에게로 나가야 한다. 모이는 것은 흩어져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이다.   

 

맺음 말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의 심장을 장착한 자들이다. 내 자아가 죽고 주님이 우리 안에 사는 자이다(갈2:20). 이로서 우리는 주님의 심장 박동소리에 예민하게 반응을 해야 한다. 주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산술적인 수치에 결코 연연하지 아니했다. 그 분은 사역적 안목을 시종일과 위로보다 아래로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사방에서 신음하며 고통 중에 있는 영혼들을 향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찾아나셨다. 오늘날 목회자와 선교사는 주님의 이 사역패턴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세상이 어렵고 혼돈스러울수록 영육 간에 병들거나 방황하는 자들이 많기 마련이다. 누가 저들 민초들을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는가? 주님의 심장으로 박동하는 선량들만이 저들의 아픔을 감당할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사도 바울이었다. 실제 했던 후맘이 그러했다. 나아가 비록 소설 속의 이야기이지만 허준의 삶도 일맥상통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교회를 때문이 아니라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였다. 크리스천은 교회의 빛과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우리가 행동으로 복음을 드러내지 않는 한 우리는 세상에 밟힐 뿐이다. 

jrsong007@hanmail.net

02.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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