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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가야 할 선교적 땅 끝

우리가 가야 할 선교적 땅 끝은 어디인가? 장기든 단기든 사역할 선교지를 결정하는 것은 선교사로 헌신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하다. 사역자로서 첫 발을 띄기 전에 “어디로(Where)”에 대한 확실한 답을 찾지 못하면 방황하기 쉽다. 이를 위해 세계 230개 국가 24,000종족을 다 리서치 할 수는 없다. 설사 세계 모든 지역과 부족을 조사한다 해도 딱히 가야 할 길이 보이는 것은 아니다.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예수께로 가면 된다. 주님께로 가면 자아가 발견되고 자기에게 맞는 사역지역과 대상이 보인다. 선교는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통해 일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생각이 앞서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크리스천은 나의 길(My Way)을 가는 것이 아니라 주님(His Way)의 길을 가는 자이다. 

 

1.  땅 끝에 대한 개념 정의

   

주님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에 대한 핵심 성경구절은 행1:6-8과 마28:18-20이다. 이 두 말씀은 서로 짝을 이루고 있다. 마28:20과 행1:8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표현이 무엇인가? “끝 날까지와 땅 끝까지”의 “까지”이다. 이것은 계속적이면서 진행형으로 표현되는 시간적 개념이다. 두 구절을 함께 하면 “주께서 세상 끝 날까지 모든 권세로 우리와 함께 할 테니 너희는 세상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가 된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땅 끝은 어디인가?. 그 어원을 해석해보면 문자적 표현과는 달리 어디라고 딱히 지적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이 없다. 예루살렘에서 직선거리로 따져 가장 먼 곳도 지구를 한 바퀴 돌면 다시 그림자가 진 제 자리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땅 끝을 지리적이거나 문화적인 개념으로 이해하곤 한다. 이를테면 지구 반대편이거나 또는 아마존 강변이나 아프리카의 밀림지역 같은 오지(奧地)를 떠 올린다. 선교적 시각으로 볼 때 답은 명료하다. 그것은 특정 지역이 아니다. 복음이 들어가 있지 않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해당되면 무엇보다 지금 내게 선교적 부르심이 있는 곳이 땅 끝이다.  

 

2. 사도 바울에게서 땅 끝

 

사도행전은 땅 끝까지 가라는 명령으로 시작됐었다. 그러면 결론은 땅 끝에 도달한 것으로 마쳐야 함에도 단순히 바울의 로마사역 기록으로 끝을 맺고 있다. 사도행전 1:8절의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은 동시적 사역개념이다. A를 다 끝내고 B로 가는 것이 아니다. 

초대 교회신자들은 잃어버린 영혼을 자기 있는 곳에서부터 찾기 시작하였고 가는 곳곳마다 땅 끝이 되었다. 선교사의 모델 격인 바울은 사역을 위해 역 문화적 지형으로 동선했다. 그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기 생각을  버리고 철저히 예수의 영을 따랐다. 그는 2차 전도여행에서 소아시아의 한 지역인 비두니아로 가고자 했으나 결국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마게도냐로 간 것이다(행16:6-10). 나중에는 로마를 갔다. 

그는 당시 세계의 수도인 로마를 택함으로 지구촌을 한 손에 움켜쥐게 된 것이다. 심장에서 박동된 피가 온 몸으로 퍼지듯 그의 선교적 지형 선택은 옳았다. 그가 만일 아시아나 아프리카의 한 오지로 갔다면 기독교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바울 사도에게 땅 끝이란 어디인가? 선교적 부담이 있는 선교적 전략지를 말한다. 

 

3. 땅 끝을 향해 나아갔던 선교사들

    

기독교 선교역사를 보면 하늘에 별과 같이 빛나는 이름들이 나온다. 근대 개신교 선교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암 케리(William Carey)는 1793년 영국에서 출발하여 인도 해안가로 갔다. 그로 말미암아 해안 선교시대가 열린 것이다. 

허드슨 테일러(Hudson Taylor)는 1853년 영국에서 중국 상해로 갔다. 1865년도에는 아무 선교사가 없는 중국 내륙으로 들어갔다. 내지 선교시대가 열린 것이다. 미국교회가 파송 한 최초의 선교사인 애도니럼 저드슨(Adoniram Judson)은 1812 인도를 거쳐 버마로 갔다.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은 아프리카 선교사인 로버트 모펫의 영향으로 1840년에 아프리카로 떠났다. 

카메룬 타운젠드(Cameron Townsend)와 도날드 맥가브란(Donard McGavran)은 고정된 지역보다 미전도 종족이 있는 곳으로 갔다. 1934년 드디어  미전도 종족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타문화권 선교에 대표 격인 방지일(方之日) 선교사는 1937년에 중국 산동성에 갔다. 이렇게 선교사들마다 바라보는 사역적 땅 끝은 달랐다.

 

4. 거창 고등학교에서 지향하는 땅 끝 원리

   

한국에는 1953년 기독정신을 건학이념으로 세워진 명문사학이 있다. 바로 경남의 거창 고등학교이다. 이 학교는 예비 졸업생들을 위한 직업선택의 10계명이 있다. 이 십계명은 고 전영창 교장의 정신이 담긴 내용이며 지금도 그 내용을 변개하지 않고 도전적 영성으로 운영되고 있다. 

①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②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③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➃모든 것이 갖추어진 곳을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➄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은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➅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➆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➇한 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➈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➉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5. 현대 시대의 땅 끝   

   

현대는 글로벌(Global) 시대이다. 21세기 지구촌은 하나의 선교지로 탈바꿈하고 있다. 여기는 1만년 동안의 농경사회를 배경으로 한 때와 확연히 다르다. 익히 아는 바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産業革命)은 사회,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 전 세계를 바꾸어 놓았다. 더구나 오늘날은 엄청난 정보력과 함께 4차 산업혁명에 진입했다. 앞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혁될지 두려움이 없지 않다. 

앞으로 선교의 전, 후방은 무의미하다. 이전 시대가 올림픽의 사격종목에서 고정판을 맞히는 것이라면 현대는 이동판을 맞히는 것이 된다. 선교적 땅 끝은 고정되지 않고 이동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에 우리 선교도 발 빠르게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세상의 흐름을 무시하고 상등문화권에서 하등문화권으로 가는 근세적 패러다임만을 고집할 때 도태될 수 있다. 

 

맺음 말

 

내가 가야할 땅 끝은 어디인가? 이는 각자의 은사와 소명을 따라 선교적 부담이 있는 곳이다. 문제는 내가 “선교적 땅 끝에 대한 확신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가?”이다. 대부분 인간은 진로나 방향을 설정할 때 이기심이 발동하기 쉽다. 어느 길이 “내게 편하고 부귀영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가?”를 심사숙고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그것도 학교 졸업을 앞둔 새파란 기독청년들이 이렇게 잔머리를 굴린다면 교회는 소망이 없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도외시하고 육체의 소욕을 따라 결정하면 결과적으로 만족도 없고 불행하다.  

선교는 삶의 도피가 아니다. 삶의 전환도 아니다. 성경이 말한 선교(Mission)는 철저히 현재적이면서 진행형이다. 선교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발등상에 있다(There is a Mission on your doorsteps). 이로서 오늘 여기에서 선교(Mission)를 하지 않는 자가 내일 저기에서 선교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우리는 서 있는 자리에서 선교적 삶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면 바울에게 마게도냐 환상을 보여주었듯 우리에게도 더 큰 땅 끝으로 성령께서 인도할 것이다. 할렐루야!

jrsong007@hanmail.net

 

10.0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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