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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선교 “복음과 사랑의 실천” (6)

뉴저지밀알선교단 단장 강원호 목사

제3절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와 육신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는 단순히 영적으로 사랑 받는 자일 뿐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사랑 받는 자이다. 육체적 친밀함이 없는 사랑이란 반쪽 사랑이고 영적 사랑도 육체를 통해서 나타난다. 헨리 나우웬은 자기표현도 잘못하고 정신활동을 할 수 없는 지능을 가지고 있고 육체로만 존재하는 장애인 아담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는 육체까지도 포함한다는 사실을 증거한다. 육신 없이 사랑받는 자가 될 수 없다. 나우웬은 장애인들을 통해 육신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신부의 결혼을 금하는 천주교적 전통과 성을 부정시 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우웬의 외로움은 더욱 컸으며 사랑받는 아들은 영혼뿐 아니라 육체까지 사랑받는 아들이 되어야 온전히 사랑받는 아들이 된다.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것처럼 장애인 아담도 육신을 가진 아기로 이 땅에 왔다. 우리는 예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것을 믿는다. 구원은 단순히 영의 구원이 아니다. 육신의 구원까지도 포함한다. 육신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는 사상이 많다. 플라톤은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라고 하였다. 영혼은 귀하고 육체는 악하다는 생각이다. 가현설 사상도 비슷하다. 예수께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시지 않았다는 것이다. 죄 된 육체에 어떻게 예수님이 오실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육체적 죽음도 부정하고 부활도 부정한다. 초대교회에도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이단이 있었다. 그래서 요한사도는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요이1:7)라고 말하였다. 

호크마 주석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것에 대하여 부인하는 이단사상 중의 하나가 곧 가현설이다. 이 같은 사상을 취하는 자들은 주장하기를 예수께서 인간과 다름없는 모습을 지니시고 음식을 드시며 피를 흘린 채 죽으신 것 등은 다만 그와 같이 보인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였다.

기독교 안에서도 물질을 악하게 보아서 성적인 것을 죄악시하고 돈을 버는 직업을 천하게 생각하였다. 성은 좋은 것이다. 만약 성적욕구가 없었다면 결혼은 없었을 것이며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적욕구를 만드셔서 서로 사랑하게 하고 결혼하게 하여 인류를 존속시키신 것이다. 불은 재산을 태우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위험한 것이지만 불은 인간이 발명한 귀한 것이었다. 음식을 익혀먹고 추위를 막아주었기 때문이다. 성적욕구도 잘못 사용하면 위험한 것이지만 그것 자체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돈을 버는 직업도 귀한 것이다. 수도원에 들어가서 성경공부만 하고 신학교에 들어가서 목사가 되는 것만 소명이 아니라 모든 직업은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임을 종교개혁자들은 외쳤다. 모든 직업이 소명이라는 생각에서 사람들은 성실하게 일했고 사치하거나 낭비하지 않았으며 그 돈을 저축하여 자본주의가 발달한 것이다. 물은 위험한 것이지만 물이 없으면 배가 갈 수가 없다. 

물질은 잘못 쓰면 위험한 것이지만 잘 쓰면 인간의 행복을 위하고 물질이 없으면 인간의 생명도 유지할 수 없다. 불교의 사상도 육체의 세상을 부정한다. 이 세상은 환상이고 그림자임을 아는 것이 도를 깨닫는 것이라고 한다. 유교의 사상도 육체를 천대한다. 사농공상 계급이 있어서 돈을 취급하지 않는 선비가 제일 귀하고 돈을 많이 다루는 상인이 제일 낮은 계급이 되었다. 

이런 영향을 받아 기독교에도 물질과 육체를 악하게 보는 사상이 있다. 그래서 구원은 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세상과는 무관하다는 이원론에 빠진다. 그러나 물질과 육체는 결코 악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좋은 것이다. 주님께서 천지를 만드시고 좋았더라 말씀하셨다(창1:31). 

 

헨리 나우웬은 아담을 통해 예수께서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온전히 알게 되었다. 아담은 그의 육체로 나우웬을 데이브레이크 공동체에 소속이 되도록 인도하였다... 

나약대학 신약교수인 김동수 교수는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이렇게 썼다.

“바울은 사람의 육신을 율법을 통해서 죄의 권세가 지배하는 장소로 제시하고 있다 육신은 인간의 욕망이 발원하는 처소라는 점에서 죄가 거하는 거주지인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육신 자체를 악한 것으로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육신을 죄의 본성이라고 번역하는 NIV 번역은 옳은 번역이라고 볼 수 없다. 또 육신을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단순히 마음과 대비되는 육신을 의미를 너무 확대한 것이다(롬7:23), 이 점에서 육신을 랍비주의 개념인 ‘악의 충동’ 과 같은 개념으로 보는 것도 바울이 의미하는 육신의 개념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육체를 악한 것으로 보고 고행을 하는 금욕주의가 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육체적 필요에 무관심하고 오직 영적인 구원만을 강조하는 잘못된 신앙인들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할 때 빈 허공에 창조하지 않으셨다.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땅과 바다와 하늘을 만드시고 아담이 먹을 수 있는 채소와 열매 맺는 나무를 만드신 다음에 아담을 만드셨다. 교회가 물질과 육체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총신대학의 이재서 교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표를 실행하며 살아야 할 인간에게 내적조건으로 지정의라는 능력을 부여하여주시고, 또한 그 능력을 전개해나갈 외적조건으로 두 가지 환경을 조성해주셨다. 그 두 가지 환경이란 바로 ‘사회적 조건’과 ‘자연 조건’이다. 사회적 조건은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적 환경이고 자연 조건은 인간의 삶과 활동이 실제로 펼쳐지는 지상 환경이다. 당신의 형상에 따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그 인간을 공중에 띄워 놓으시거나 황량한 들판에 아무렇게나 방치하여 두지 아니하시고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여 살게 하신 것이다.”

복지와 구제는 정부가 하고 다른 종교도 하니까 교회는 오로지 영혼 구원하는 전도만 해야 한다는 논리는 예수께서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생각과 비슷한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의도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교회일수록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강조한다. 복지와 구제는 실제적으로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지만 전도는 그리 돈이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전도된 사람들이 헌금을 하면 그만큼 교회는 돈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리하여 물질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사람들이 그 물질을 주인으로 섬기는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영혼구원이라는 명분으로 헌금을 내는 고객확보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교의 비즈니스야말로 투자 없이 수익을 올리는 최고의 사업이 된다. 종교 사기꾼들이 교주 노릇을 하며 사치를 누리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물질적 섬김이 없이 지식으로만 전도한 기성교회의 잘못된 토양이 기회를 제공했는지도 모른다. 영혼구원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그 영혼이 살고 있는 몸의 문제를 소홀히 한다면 그 영혼구원의 진정성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공산혁명이 일어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교회는 지배층과 결탁하여 사치를 누리면서 가난하고 약자들은 죽어 천국이 있으니 이 땅의 가난과 억압을 그냥 인내하라고 하며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는 상황에서 막스와 레닌은 기독교가 혁명을 가로막는 아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당시의 서양 기독교는 그리고 지주 크리스천은 물질로 가난한 자들을 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제에게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서 말로만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는 것은 거짓 믿음”이라고 야고보서는 말한다(약2:16).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라” 하면서 영혼은 구원해주시는 데 배고픈 문제는 너가 알아서 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 복음이다. 복음은 영과 육을 구원하는 총제적 기쁜 소식이기 때문이다. 

miju92@gmail.com

05.0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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