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나우웬은 조건 없는 사랑을 원하는 마음의 상처를 갖고 있음에도 집안 분위기의 영향을 받아 천주교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 교육을 받았는데 그 교육은 더욱 그의 사랑에 대한 갈증을 증가 시켰다. 그 교육은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말라는 교육이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은 친밀함을 원하고 있었다.
헨리 나우웬은 독신생활을 해야 하는 천주교 성직자들이 친밀함을 구하는 것의 어려움을 알았다. 성직자들은 사람들과 너무 가까이 지내거나 특별한 관계를 가질 때 오는 위험들을 강조하는 신학교 교육을 받았다. 신학교에서 그는 누구하고나 친구가 되지만 특정한 한 사람과 특별히 가까워지지 않게 만드는 환경에서 그는 친밀한 교제를 필요로 했다.
신학교 교육은 육체를 죄악시했다. 그래서 그는 육체적인 친밀성을 경험할 수 없었다. 그는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외로웠다. 신학교에서 그는 무조건적으로 섬기고 신성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체를 엄격하게 다스려야 했다. 나우웬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샤워할 때 얇은 옷을 입어 서로가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을 볼 수 없도록 했고, 잠잘 때는 이불 위로 두 팔을 가슴 위에 포개어 놓았다. 육체는 믿을 수가 없었다. 죄 많고 파괴적으로 정처 없이 거닐 경향이 있는 육체는 천국을 향해 가는 채찍질을 받아야 하는 노새였다.
그는 남미 페루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이웃을 돕는 봉사도 있었지만 그의 내면의 깊은 동기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께 인정받고 싶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그는 거기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찾고 있었다.
페루에 있을 때 나우웬은 이제 선교활동은 진주를 파는 쪽에서 찾는 쪽으로 바뀌었다고 말한 한 선교회 소속 사제의 통찰에 크게 깨우친 바가 있었다. 나우웬은 가난한 이들의 집에서 생활하면서, 우리가 빈한한 자들에게 사역하는 것은 그들에게 예수를 전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그들에게서 오히려 예수를 찾기 위함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는 페루 고아들을 통해 애정에 굶주린 사람이 육체접촉으로 위로받음을 알았다. 육체를 죄악시하는 그의 천주교 신학교 교육의 약점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페루에 가 있는 동안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썼다.
“신체 접촉의 힘을 우리는 정말 모르고 있었습니다.” 이 말의 배경에는 직전에 다녀온 고아원이 있었다. 애정에 굶주린 그곳 아이들은 나우웬을 서로 만지려고 다투었다. 그의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요구는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 이하였다. 그는 추종뿐 아니라 친밀함을 갈망했다. 그는 강의하고 갈채를 받은 후 완전히 혼자된 느낌을 받는 적이 많았다. 행사 책임자들은 강의 후 그를 식사나 티파티로 초청하는 일을 잊은 적이 많았고, 그것을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나우웬은 자신의 필요와 불안정 때문에 친구들에게 관심을 요구했다. 그러나 때로 친구관계를 구걸하는 거지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일기에 적었다. 그는 많은 사람을 위로해주는 사람이었지만 그 또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었다. 최고의 지성의 전당인 하버드에서도 그는 외로웠다. 그곳은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를 추구하기보다 지적 토론을 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소속할 곳을 찾고 있었고 친밀한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하버드는 지적인 삶과 관계 맺어야 하는 곳이었지만 그는 자신의 영적인 삶을 더욱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우웬은 더 많은 교수들이 기도하는 학부의 일원이 되기 원했지만 기도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고, 그래서 그는 혼자라고 느꼈다.
그는 소속할 곳을 찾고 있었다. 장애인 공동체 라르쉬를 시작한 장 바니에가 토론토 라르쉬 공동체 데이브레이크를 소개했을 때 헨리 나우웬은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임을 알았다. 또한 좀 더 급진적으로 그리스도인의 제자도를 실생활에서 실천하도록 인도해줄 것임을 확신했다.
장애인 공동체 데이브레이크에서 장애인 아담 돌보며
자기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생각하고 경험...
나우웬이 데이브레이크 장애인 공동체를 찾는 이유는 봉사하거나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한 것이 첫째가 아니었다. 조건 없는 사랑에 대한 갈증이 그를 데이브레이크를 찾게 했고 그는 거기에서 비로소 조건 없는 사랑을 맛보았다. 그의 전기를 썼던 크리스토퍼 드 바빙크는 이렇게 썼다.
“헨리 나우웬은 자신을 희생하는 행위로써 그 선택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 선택이 자신을 위해 좋은 선택이었기 때문에 한 것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그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위해 자신을 부른다고 느꼈다. 그는 신학교의 신학이 그에게 가르쳐주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과 내 가슴 속에 계신 하나님을 발견하는 법이었다. 말하자면 그는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받기 위해서, 넘쳐서가 아니라 모자라서 그곳으로 간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장애인 아담을 돌보면서 자신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생각하고 경험했다. 그 사랑은 그가 평생을 찾아다녔던 것이다.
그는 아담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심도 그와 같을 것이라고 깨달았다. 나우웬이 육체적인 중증의 장애인 아담을 사랑하듯, 하나님께서도 영적으로 중증의 장애인인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나 신음으로밖에는 반응할 줄 모르는 우리를 아담과 일하면서 그는 실로, 사막의 수도자들이 오랜 수행 끝에 도달하는 겸손과 비움을 배웠다.
그가 아담을 돌보면서 보낸 시간은 더없이 귀중한 묵상의 시간이었다. 자신의 전 생애는 안에서 싸우는 두 음성의 삶이었다고 헨리 나우웬은 말한다. 한 음성은 성취하고 이루라고 부추겼고 또 한 음성은, “나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라는 위로 가운데 안식하라고 일렀다. 생애 마지막 십년간에야 그는 진정으로 두 번째 음성을 들으며 살았다.
나우웬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사랑 받는 자이셨던 것처럼, 자신도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받는 자임을 인정하고 받아들 때 진정한 치유와 자유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이제 분명히 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들려온 그 말씀들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는 바로 나를 향해 들려주시는 말씀이시기도 하며 예수님의 형제자매 된 모든 사람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이기도 하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 무조적인 사랑을 받는 자라는 진리를 일단 마음속에 받아들이게 되자, 세상에 보냄을 받아 예수님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가장 커다란 영적인 과업은 내가 하나님께 속한 존재이며 세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야말로 온전히 믿는 일이다.
[참고저서] 크리스토퍼 드 빙크, 김동완 역, “헨리 나우웬”(서울: 요단, 1999), 마이클 포드, “헨리 나우웬”, 헨리 나우웬, 김명희 역, “영성에의 길”(서울: IVP, 1996)
03.13.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