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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영적 치유”(4)

왜곡된 사고는 죄성, 영적 무지, 반항심에서 시작돼 

치유는 속인 곳 찾아 하나님 말씀으로 바꾸는 과정

태초에 아담과 이브가 동산에서 그랬던 것처럼, 왜곡된 사고는 우리의 죄성이나 영적 무지, 혹은 반항심에서 시작되었을 수도 있다. 이에 대한 많은 이유를 살펴보면, 1)우리의 비논리적인 사고 2)사람이나 상황의 이해 결여 3)영적 관점에서 큰 그림을 볼 능력의 부족 4)우리의 죄성으로 인한 이기심과 반항심 5)성경 말씀의 지식 결여 6)상식의 결여 등이 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기 시작하면, 악마는 더 왜곡시킬 수 있고 하나님과의 동행에 더욱 많은 영향을 끼치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가치를 깨닫고 옳은 것과 그른 것은 성경 말씀에 비추어 알아야 하며, 또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가족 영향: 아담이 그의 아내 이브와 함께 했었고, 이브와 늘 함께 다녔기 때문에 이브가 잘못하는 것을 고쳐주거나 막지 못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말았다. 우리의 죄를 정당화하려고 시도하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고 오히려 고통과 혼란을 가져오며 이는 바로 본질적으로 왜곡된 사고이다. 아담과 이브는 순종의 시험에 실패했다. 그들이 실패한 원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면서부터 시작됐다. 그들은 자신의 판단력을 신뢰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보다는 악마의 파괴적인 달콤한 소리에 귀 기울였다. 

악마: 우리가 마음속에 들리는 모든 부정적인 소리가 마귀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평가 절하하는 것일 수 있다. 하지만 내면으로부터 들리는 음성이 자기 생각이 아닌데 ‘너는 잘못하고 있다’ 하는 음성이 분명하게 들릴 때는 마귀가 주는 음성이라 판단해도 좋다. 

성경에서 마귀는 고발자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계12:10).

예수님도 성경 말씀을 비틀어서 그 뜻을 왜곡시킨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셨다. 마귀는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라고 예수님을 부추겼고, 천사가 구할 것이라며 성경의 말씀을 인용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셨다(눅4:12).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경 말씀을 알고 왜곡되게 인용하는 것을 맞서 싸울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다. 마귀도 마찬가지로 말씀을 알고 있어서 이를 왜곡하여 우리의 죄성을 나타나게 함으로써 우리를 죄에 빠지게 만든다.

마귀의 거짓에 속은 사람은 자신과 남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그들이 주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마귀의 시험에 말씀으로 대적하여 싸우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마귀는 아직도 그가 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우리의 죄성은 우리를 죄에 빠지게 할 것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비논리적인 사고의 씨를 심어 놓아서 의심케 하고 진실을 왜곡하도록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일하고 있다. 마귀는 아직도 똑같은 거짓으로 사람들을 속여 상처받게 하고 죽이려 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는 순간순간 끊임없는 영적전쟁 가운데 있지만, 하나님은 모든 방법과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싸울 수 있는 무기를 예비해두고 계신다는 것이다. 

우리의 문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문화 가치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가치 있는 좋은 문화가 얼마든지 있다. 하나님은 우리 개개인에게 양심을 주셨는데, 이는 선하고자 하는 염원과 다른 사람에게 잘 해주고 싶은 염원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가치관과 도덕적 기준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하나님의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면, 그 가치는 왜곡된 사고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어떤 종류의 편견이나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무례함이 색깔, 성별이나 나이든지 어떠한 형태로든 다른 사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는 하나님의 가치에 어긋난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에 따라 모든 사람을 귀하고 동일하게 만드셨지만, 불행하게도 어떤 사람은 편견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며 자신을 높인다. 그건 죄악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는 것처럼 서로의 소중함을 배워야 한다. 

미디어: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조심을 기해야 한다. 미디어는 사람들이 가치의 기준으로 삼는 좋은 예이다. 만일 미디어를 개발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가치와 기본을 갖추고 있다면 도덕심을 쌓아가고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가치를 모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가치는 왜곡된 가치일 수 있다. 음악, 책, 예술과 다른 요소도 우리의 가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다른 사람의 영성에 노출되어 있다면 이 또한 그들의 영적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타인: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에게서 듣는 말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우리에게 영향을 끼친다. 유감스럽게 우리가 하나님의 참뜻을 잘 알지 못한다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잘못된 가치와 사고의 영향을 받게 된다. 바울은 이것에 관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15:33-34).

종교: 어떤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겠지만, 왜곡된 사고가 얼마나 그들의 생각과 행동을 반영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죄악된 생활방식에 맞게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기 시작할 때 부분적인 진리는 우리를 해칠 수 있다. 다른 신자들이 갖는 가치나 심지어 종교 지도자조차도 항상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반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들 또한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의 죄성으로 인한 영향을 받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 시절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죽어야만 한다고 믿어서 수많은 비난을 만들어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시기 질투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몰아넣었다. 죄없이 순수한 사람을 비난하며 거짓말하는 것은 죄다. 성경 말씀을 빗대든지 아니 대든지 죄악된 생각이나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에 관해 가르치려 성경을 사용하지만 온전한 진리 가르치기를 소홀히 할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셨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눅11:42).

바울 사도는 이에 덧붙인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골2:8).

왜곡된 논리적 사고에서 치유된다는 것은 우리를 속인 곳을 찾아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꾸어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며, 이를 처리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다. 당장 고통에서 놓임 받지 못한다 하여 낙담치 말아야 한다. 영적 치유는 하나님의 도움으로 치유 받아야 하는 영역이다. 이 일은 사고력과 묵상을 해야 하는 것이 힘든 일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 뒤틀린 사고를 하며 사는 것은 고통과 불행만 초래한다.

yonghui.mcdonald@gmail.com

 

10/19/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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