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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왕 예수님

초/대/칼/럼

요즈음 매스컴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모두 지도자들 때문에 힘든 기사들 을 크게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옛날 사울을 왕으로 세우시고 후회하셨는데 오늘날에도 그러실 것 같습니다. 사람은 모두 죄인이므로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없지만 좋은 지도자들에 대한 바람이 절실한 것이 사실입니다. 학교에도 나라에도 그리고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들의 현실에서 만나는 지도자들이 부족하고 흠이 많을지라도 우리들에게는 예수님이 계셔서 얼마나 다행이고 복인지 모릅니다.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과 예수님을 비교할 때에 예수님께서 나의 왕 우리들의 왕이 되심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위대하신 왕이십니다. 

아하수에로는 당시에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의 127도를 정복하고 다스린 위대한 왕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땅은 정말로 넓은 땅이니 그 당시엔 얼마나 크게 여겨졌겠습니까? 모든 문무백관을 청하여 180일(6개월)동안, 수도의 모든 백성들을 청하여 7일간 초 호화잔치를 하며 자기의 부와 힘을 과시하고 뽐냈던 왕이었습니다. 모든 신하들과 백성들은 그러한 그를 대황제(great king)라고 부르며 행복해 했습니다. 이에 비하여 예수님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가진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우주는 수많은 은하계로 구성되어 있고 지구는 그 중 한 은하계에 속하여 있다고 합니다. 어느 전문가가 그 규모를 이렇게 비교하였습니다. 우주가 사방 100미터 모래밭이라면 은하계 하나는 그 안에 있는 모래 한 알갱이와 같고 지구는 그 모래 한 알갱이의 10,000분의 1에 해당하는 크기가 된다고 합니다. 아하수에로가 가졌던 땅은 우주에서 보면 찾아볼 수조차 없이 작은 규모이니 예수님은 얼마나 더 큰 왕이십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냥 위대하신 왕이 아니라 가장 위대하신 왕(the greatest King)이시며 왕 중의 왕(the King of kings)이십니다. 

정말 힘든 생애를 보낸 다윗은 말년에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겠습니다”(시145:1)라고 기도하며 찬양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가운데 임하셨던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상의 지도자들이 교만하고 거짓되고 무례하여서 우리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우리에겐 가장 위대하신 왕 예수님이 계셔서 너무 든든합니다. 사람 지도자들을 보며 실망만 하고 있지 말고 나라와 민족의 흥망성쇠와 개개인의 생사화복의 열쇠를 쥐고 계시며 가장 위대하신 왕이신 예수님께 오늘과 내일을 맡기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삽시다! 

 

둘째, 예수님은 자비로우신 왕이십니다. 

아하수에로왕은 허락 없이 자기 앞에 나타난 에스더에게 금홀(scepter)을 내밀므로 죽지 않고 살 수 있게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그 이유는 에스더가 심히 사랑스러웠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그 자리에 죄인이나 아름답지 않은 일반 평민이  서 있었다면 틀림없이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홀을 쥔 그의 손은 아주 사랑스러운 자에게 베푼 자비요 긍휼이었습니다. 그가 베푼 자비에 비하여 예수님의 자비는 어떠합니까? 

예수님의 손은 십자가에 못박힌 손이며 그 손은 그의 자비가 얼마나 큰 가를 보여주신 증거입니다. 더구나 우리 모두가 전혀 아름답지도 사랑스럽지도 못한 죄인들인데 우리들에게 자비를 베푸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눈이 비친 우리들의 모습을 벌레, 구더기, 지렁이, 짐승, 죄인 중의 괴수와 같이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더럽고 추한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사 십자가에 자기 손을 못박은 예수님이야말로 진실로 진실로 위대한 왕이신 것입니다. 

서로 정죄하고 심판을 일삼는 지도자와 백성들은 훗날 수치를 면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과 교회와 나라의 죄를 안고 이 모든 죄를 용서해주실 수 있는 가장 자비하신 예수님께로 회개하며 나아갑시다. “큰 죄에 빠진 날 위해 주 보혈 흘려주시고 또 나를 오라 하시니 주께로 거저 갑니다. 내 죄를 씻는 능력은 주 보혈 밖에 없도다 정하게 되기 원하여 주께로 거저 갑니다. 주 예수 베푼 사랑이 한없이 크고 넓으니 내 뜻을 모두 버리고 주께로 거저 갑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왕이십니다. 

아하수에로왕은 에스더에게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소원을 물었습니다. 그것은 에스더가 3일을 단식하고 왕비의 예복을 입고 두려운 마음으로 자기 앞에 선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왕비가 자기의 허락도 없이 죽을 수 있는 자리에 선 이유를 읽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왕비 에스더의 진실함과 간절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금홀을 내어밀 뿐만 아니라 에스더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소원을 들어주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그의 모든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위대하신 능력의 왕이십니다. 하늘과 땅을 소유하고 계신 가장 부요하신 왕이십니다. 우리가 욕심을 따라 죄 된 것을 구하지 않는 한 그것이 예수님이 보시기에 꼭 필요한 것이라면 진실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구하는 백성의 소원을 들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에 대하여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하시며 이어서 “자녀가 떡을 달라 할 때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 할 때 뱀을 주는 부모가 있느냐? 

 

너희는 악할 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한다면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너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간절함과 진실함을 가진 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가지고 계심을 자증하신 것입니다. 

여리고로 지나가실 때에 바디매오라는 시각장애인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소리쳤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했으나 그는 더욱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가던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서 “네 소원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의 간절함과 진실함을 보신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3일을 단식하고 예복을 차려 입고 두려운 마음으로 어전 앞에 섰던 에스더처럼 진실하고 간절함과 아울러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분의 보좌 앞에 서는 백성들의 소원을 들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경험하며 지금까지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 시간 이 글을 함께 나누며 우리 모두 간절함과 진실함으로 우리의 왕 예수님께 자신과 가족과 교회와 나라를 향한 소원을 아뢰고 찬양합시다.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셔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찬양을 받아주소서 주님을 찬양하오니 주님을 경배하오니 왕이신 예수님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pwkim529@gmail.com

 

09.21.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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